[10대~70대 탄핵 가결 반응] 전 세대 아우른 촛불 '광장 민주주의'가 새 역사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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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촛불이, 다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백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길 한 달 남짓. 긴 기다림 끝에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로 전에 없던 국정 마비 사태는 한 고비를 넘겼다.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외치며 '올바른 대한민국'을 염원하던 시민들은 9일 오후 텔레비전 앞에서, 차가운 거리에서 국회의 결정을 크게 반겼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힘을 한데 모아 역사의 변화를 이끌어 낸 시민들은 어떤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있을까. 10대부터 70대까지, 부산 서면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전국을 누비며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한다.

10대 이정균 양
옳지 않다고 믿는 것이 바뀌니 좋아

지난 3일 가족들과 함께 촛불시위에 참가한 후 인증샷을 남긴 이정균(19·부산 수영구 망미동) 양은 탄핵 표결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옳지 않다고 믿는 것이 바뀌니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양은 "대통령이 '시민들이 이러다 말겠지'라고 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또 담화라고 발표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고 행동하는 건 없어서 믿는 게 있으니까 이러나 보다 했다"며 "그런데 결국 국민이 이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양은 또 "대통령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일을 국무총리가 대신하게 된다고 하는데, 국무총리도 대통령 사람이라 믿을 수 없고 지금이랑은 다르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 무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 양은 "앞으로 대학생이 되어서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20대 홍자명 씨
우리 세대도 뭔가 해낼 수 있어 뿌듯


부산지역 공기업에 근무하는 홍자명(28·부산 남구 문현동) 씨는 이번 탄핵 가결안을 바라보며 "우리 세대도 뭔가를 해낼 수 있구나"하는 뿌듯함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20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부조리한 것들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홍 씨는 "최선을 다해 본분을 다하며 살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니까 뉴스를 보는 게 힘들었다"면서 "이렇게 시민들의 힘으로 무언가가 바뀌는 것을 처음으로 눈앞에서 보고, 피부로 직접 느꼈다. 이런 경험과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씨는 최근 2주간 집회에 참여하며 주말을 보냈기 때문에 10일은 쉬며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집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그는 "처참한 국정농단의 와중에도 행동하는 성숙한 시민이 있고, 나도 그들과 목소리를 함께 내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희망을 느끼니까 뉴스나 신문을 보는 게 즐거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30대 이원득 씨
집회 참석은 처음… 당연한 결과로 생각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이원득(30·울산 남구 무거동) 씨는 지난달 초부터 울산 도심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두 차례 참여했다. 이 씨는 "정치인도 아니고, 어떤 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집회에 나가서 촛불을 들고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 것은 아니었다. 이 씨는 "대선이나 총선이 열릴 때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곤 했지, 이번처럼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9일 국회의 탄핵 가결 소식에 이 씨는 "당연한 결과"라면서 "투표는 국회의원들이 했지만, 매주 전국 곳곳에서 국민이 촛불을 들면서 이뤄낸 성과이자,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향후 정국에 대해 이 씨는 "야당에서 황교안 총리를 비롯해 현 행정부 수장들도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혼란만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행정부와 국회가 사회 안정을 되찾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40대 김은경 씨
두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참여

영어 강사 김은경(46·여·부산 금정구 남산동) 씨는 2012년부터 촛불을 들었다. 들불처럼 번진 이번 촛불 집회도 매주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한 달 새 서울 광화문 집회에도 두 차례나 참석했다. 김 씨는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긴 대통령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면서 "대학생과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틈틈이 촛불 집회에 나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9일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기다리던 김 씨는 오후 4시 10분께 결과가 나오자 "당연한 결과이지만 눈물이 날 것 같다. 촛불 민심과 국민의 진심이 어디로 가는지 정치권과 헌법재판소가 한 번쯤 생각해보라는 역사적 심판의 날"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김 씨는 "탄핵안은 가결됐지만, 행정부와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국민이 압박을 해 나가야 한다"면서 "정치인들이 그동안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채 기득권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정치를 해야 할지 제대로 깨우쳤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0대 김미정 씨
응당한 처벌 나올 때까지 촛불 켜야

화명종합사회복지관에서 탄핵안 가결 소식을 접한 사회복지사 김미정(53·여·부산 북구 화명동) 씨는 동료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오전 내내 김장 봉사를 하느라 다리 힘이 풀릴 대로 풀려 있었지만, 김 씨는 오랫동안 자리에 서서 손뼉을 쳤다. 김 씨는 "서면 촛불집회에 세 차례 참석했는데, 지인들과 시간이 맞지 않을 땐 혼자 참석하기도 했다"며 "혼자였지만 촛불 인파 속에서 외로움 대신 동질감을 느꼈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김 씨는 또 "대한민국의 최고 수장이라는 사람이 중소기업 사장들도 하지 않는 짓을 했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극복하기 힘든 분노와 우울함을 느껴 촛불집회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한 김 씨는 "탄핵 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은 촛불의 기세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인다면 또다시 물타기에 나설 것이다"라며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완전히 나오고 응당한 처벌이 내려질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60대 김경덕 씨
염원하던 일인데 웃음보단 눈물이 앞서

서울 광화문과 부산 서면 촛불집회에서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쏙고 아줌마'라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김경덕(60·여·부산 강서구 가덕도동) 씨. 김 씨는 9일 탄핵안 표결 과정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다 탄핵안이 가결되자마자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김 씨는 "세 번이나 서울 촛불집회에 다녀올 정도로 염원하던 일인데도, 막상 벌어지고 나니 웃음보다는 눈물이 터져나왔다"며 "많은 국민이 지지와 신뢰를 보냈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이 지경에 빠뜨려놓았다는 생각이 마음을 저리게 했다"고 소회를 말했다.

김 씨는 탄핵안 표결 관련 방송이 시작된 9일 오후부터 텔레비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가덕도 자택에 있어야만 했지만 마음만큼은 벌써 여의도 국회 앞에 가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고 심정을 전했다. 김 씨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고 싶지만, 헌법재판소 등 법적 절차가 남아 있으니 이 절차를 엄중하게 잘 지켜서 마땅한 처벌이 내려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0대 윤경부 씨
찬성 표 더 많이 나왔어야 했는데 아쉬워


윤경부(76·부산 해운대구 반송1동) 씨는 대통령 탄핵 표결 결과를 뉴스로 접하고는 "탄핵 찬성 표가 234표가 나왔는데, 다소 아쉽다. 다들 230표 이상이면 압도적이라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250여 표 이상이 나와 줬으면 하는 기대를 했다. 국민의 뜻을 아직까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 씨는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 일일이 다 찾아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라며 "대신 젊은 사람들이 찾아내서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난달 서울에 일을 보러 가는 김에 광화문에 한 번 다녀왔고, 서면 집회에는 거의 매주 동네 이웃들과 함께 나갔다. 그는 "두 달 남짓 촛불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 헛되지 않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으니 헌법재판소 결정만이 남았는데, 재판관들 또한 국민의 거센 함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헤아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결정을 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김경희·민소영·안준영·조소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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