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주식갤러리, 국회 청문회 '씬스틸러' 역할로 우뚝…네티즌 수사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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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자정까지 진행된 2차 청문회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순실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증언을 "최순실이란 이름은 못들었다고 볼 수 없다"며 황급히 번복하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질의는 박영선 의원이 "시민들에게 제보받았다"며 공개한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의 검증 청문회 영상이었다. 

'미꾸라지' 김기춘도 말을 바꾸게 만든 그 영상에는 버젓이 '최순실' 이름이 들려

영상 속에서는 한나라당 내부와 외부에서 선임된 청문위원들이 당시 박근혜 예비후보와 최태민 씨의 약혼설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며 최 씨의 딸인 최순실 씨와 그의 재산취득 과정을 집중 조사했다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 속 화면이 객석을 비추자 당시 박근혜 캠프의 선거대책부위원장이자 법률자문위원이었던 김기춘 전 실장이 자료를 살펴보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기춘 전 실장은 청문회 전략을 세우는 핵심멤버였다. 그의 '위증'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박영선 의원은 "김기춘 실장이 바로 앞에 있었던 후보검증 청문회"라고 영상을 설명했고, 박영선 의원은 "그런데 최순실을 몰랐다? 이게 앞뒤가 안맞지 않냐"고 재차 물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죄송합니다. 저도 이제 나이 들어서…"라며 급히 답변을 생각해내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이전까지의 모습과 달리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영선 의원은 "이제와서 나이들어서...나이핑계 대지 마시구요"라며 계속 그를 추궁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이내 "저도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순실을 알지는 못 한다. 접촉은 없었다"며 만난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거듭 주장했다.

'네티즌 수사대' 한 방 먹은 김기춘 전 실장...이어지는 박영선 의원의 집중 공격

김기춘 전 실장은 최순실 씨 전 남편으로 '비선실세 의혹'으로 앞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적이 있던 정윤회씨에 대해서도 "정윤회도 모른다. 접촉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대답에 박영선 의원은 "2004년도에 저하고 똑같이 국회의원이셨죠? 정윤회는 2004년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이었다. 의원회관에 제가 정윤회를 만나러 갔다"며 다시 한번 위증 의혹을 강조했다.
 
박영선 의원은 "김기춘 법률위원장이 정윤회를 모른다고? 하늘이 두렵지 않습니까" "더 이상 어떤 말을 해도 믿지않을겁니다"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김기춘 전 실장을 계속 질타했다. 

이어 김기춘 전 실장이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로 재직했던 시절, 당시 두산베어스 홍보과장이었던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특강을 했다는 사실까지 지적하며 질의를 끝낸 박영선 의원 얼굴에는 드디어 '한 건 했다'는 웃음이 보였다.

이렇듯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듣던 김기춘 전 실장이 코너에 몰리는 모습을 보기 까지에는 박영선 의원이 '시민제보'라는 걸 밝히며 질의에 들어갔 듯, 실시간으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국정조사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던 일반 국민의 힘이 컸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다.

청문회 양상 뒤흔든 명탐정 '주갤러'...미국 대선 '실시간 팩트체크' 안 부러워...

박영선 의원이 밝힌 이 '박근혜 검증청문회 동영상' 시민제보는 사실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손혜원 의원과 안민석 의원에게도 제보가 함께 들어갔었다. 영상을 발굴해 의원들에게 제보를 한 이 시민들은 인터넷커뮤니티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 이용자였다. 

평소 다른 커뮤니티나 인터넷 언론에서는 별칭인 '주갤러'로도 불리는 이들 이용자들은 평소 빼어난 정보수집력으로 '주식만 빼고 다 잘한다'는 아이러니한 세간의 평을 듣기도 했다. 각종 주제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인 이 주식갤러리에서는 최근 들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이번 국정조사 청문회와 관련해서도 실시간으로 시청소감이나 김기춘 전 비서질장의 답변 태도와 관련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7일 오후 8시 24분 쯤 익명의 한 '주갤러'가 문제의 동영상을 발견했다는 글을 올리며 위증 근거를 국조위원들에게 알리자고 요청을 했다. 그리고 1시간 뒤에는 박영선 의원 측에 제보가 들어갔다는 글이 올라왔다. 제보가 된 시점은 오후 9시쯤이었다. 

이로부터 30분쯤 뒤에 박영선 의원의 질의차례가 돌아왔고, '주식갤러리' 발 김기춘 위증 근거 동영상이 국회 청문회장에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불과 1시간도 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박영선 의원의 보좌관이 최근 탄핵 국면에서 알려진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통해서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영상에 앞서 제보된 '정윤회 문건'도 주식갤러리 자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풍 같은 박영선 의원의 김기춘 추궁이 끝난 뒤, 오후 10시 15분 경 본지의 첫 '주식갤러리' 언급 보도를 시작으로 '주갤러'의 활약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야 끝난 국회 청문회의 양상을 바꾼 주식갤러리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하는 등 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 대선후보들의 토론을 검증한 실시간 팩트체크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성규환 에디터 mul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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