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을 위한 변명] 국정을 농단한 '가짜 무당' 치유의 믿음까지 희롱했네
2016년, 한국인에게 '샤머니즘'은 무엇인가? 평범한 시민들은 종교와 무관하게 새해가 밝으면 토정비결을 보고,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간혹 점집을 찾아 상담도 받아 본다. 젊은이들은 타로점 텐트를 즐겨 찾기도 한다. 결과를 얼마나 믿느냐는 제각각이다. 최순실 씨와 관련해 거론되는 샤머니즘은 좀 다르다. 최태민 최순실로 이어지는 사이비 종교 행태가 한민족의 전통 신앙과 샤머니즘 문화 이미지를 도매금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번 사태는 정치와 종교, 공적 업무 시스템과 사적 인연을 엄격히 구분하지 못한 최악의 후진적 스캔들로 평가받고 있다. 샤머니즘은 정말 유죄인가? 때아닌 국정농단의 누명을 쓴 샤머니즘을 들여다봤다.
"마을축제 같은 별신굿 현장
제의로 공동체 결속 다져
진짜 무녀는 사욕 채우지 않아
자신 내던져 사람들 안녕 기원
최순실에 모욕당한 샤머니즘"
부산 기장군에선 해마다 정월이면 '기장군 전통 풍어제'가 열린다. 이름은 풍어제인데, 핵심 주제는 동해안별신'굿'이다. 기장군에 있는 이천 공수 두호 대변 학리 칠암, 이렇게 6개 마을이 매년 정월마다 돌아가며 판을 벌인다. 바다를 삶터로 삼은 이 지역 선조들은 마을의 안전과 만선을 기리는 제사의 의미로 한 해가 시작되는 때에 별신굿을 올렸다.
동해안별신굿은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됐다. 남해안별신굿, 진도씻김굿도 중요무형문화재다. 즉, 굿은 문화다. 신에게 굿을 시작한다고 알리고 굿판에 신을 모신 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바치고 복이 내리기를 기원한 뒤 환송하는 형식이다. 동해안별신굿이 초청하는 신은 그 마을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골매기 서낭신, 조상신, 성주신이다.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기리는 셈이다.
동해안별신굿을 비롯한 전통 무속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심상교 부산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말한다. "별신굿 현장을 가 보면 완전히 마을축제예요. 평소 일상에 바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출향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선출직 공직자들도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기 때문에 유권자와 공직자의 만남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예로부터 바닷가 마을은 별신굿 같은 제의를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풍어와 안전을 기원했다. 굿판에서 무녀들이 부르는 무가 주제는 대략 안과태평(탈 없이 태평하게 지나감) 시화연풍(시절이 평화롭고 풍년이 듦) 부귀공명(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떨쳐 이름을 떨침) 제액초복(액을 배제하고 복을 부름)을 담고 있다.
부산에서 동해안별신굿을 주관하는 무당은 김동언(61) 씨. 굿에다 전통 연행을 폭넓게 수용해 후세에 남긴 고 김석출 선생의 셋째 딸이다. 맏언니 영희, 둘째 언니 동연 씨 모두 아버지의 동해안 별신굿을 물려받았다.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가 아니라 연행으로서의 굿을 주관하는 세습무다.
"자신을 던져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복을 불러 주는 것이 무당의 소명인데, 자기 욕심만 채우는 무당은 무당이라고 할 수 없다"고 심 교수는 말했다. 전국의 무당들은 최순실을 무당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채희완(부산대 명예교수) 민족미학연구소 소장은 "세습무는 어릴 때부터 익힌 기예를 통해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무속을 비롯한 샤머니즘은 한국 문화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샤먼은 신과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대 동북아의 종교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난다는 얘기를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하잖아요. 노래(무가)와 춤으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상태(엑스터시)로 나아가는 것이 굿이고, 무녀는 자신을 이타적으로 내던져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채 소장은 1988년부터 2007년까지 민족통일대동장승굿을 했고,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부산에서 위안부 해원상생굿을 벌이기도 했다. 그에게 해원상생굿은 '예술적 표현을 통한 역사와의 만남'이었다. 조상의 원혼을 달래는 일이자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역사를 기억하는 장치로 굿을 택한 것이다.
현대 도시인들은 굿을 구경하기 어렵다. 대신 사주 명리학에 바탕을 둔 오늘의 운세와 토정비결, 타로점 새점 신점 쌀점 등의 점술, 관상과 풍수지리 등은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특별한 선택을 앞뒀을 때, 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이런 곳에서 상담이라도 받아 볼까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연말연시, 졸업과 진학·취업 철이면 철학관과 점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주 명리학을 가르치며 상담도 하는 박청화철학원 박청화 대표는 자신의 사주를 들이미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계획대로 일이 잘 안 풀려 오는 분이 대부분이죠. 상담을 받고 나면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합리화할 근거가 생기기 때문에 심리적 위안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진화해 왔다. 종교는 신과 인간,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해석하고 매개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그 불안을 상쇄시켰다. 상담과 치료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던 샤머니즘은 성리학의 나라를 택한 조선조부터 밀려났고, 일제 강점기와 새마을운동을 지나며 '미신'으로 치부됐다. 아버지의 복권을 사명으로 출범한 박근혜정부가 그 '미신'에 농락당한 것은 아이러니다. 최순실은 이타 대신 이기를 택했다. 그가 무슨 굿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샤먼이 아니다. 샤머니즘은 죄가 없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