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을 위한 변명] 시끌벅적 문화 이벤트… 굿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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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동삼동 하리항에서 열린 동삼어촌계 풍어제 모습. 부산일보DB

"굿은 특정 상황에서 인간 행위로 신비한 힘을 체험하거나, 그런 힘과 소통하고 싶은 열망이 반영되고 실행된 구체적 사건이자 현상이다. 지금까지 굿 연구에서 굿의 신성한 힘과 이 힘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심리나 희망에 대한 연구는 다소 소홀했다."

심상교 부산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렇게 썼다. 지난해 8월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열린 '제2회 국제샤먼예술학회' 때 발표한 소논문에서다. 국제샤먼예술학회는 2014년 5월 중국 상하이음악원에서 동북아 각국 샤머니즘 연구자들이 모여 창립했다. 샤머니즘의 뿌리가 동북아인 만큼 지난해 학회에서도 몽골과 한·중·일 학자의 발표가 주를 이뤘다.

부족함 메우기 위한 욕구
신성성과 연결된 의례가 '굿'

부산 영도에서 강원 고성까지
마을마다 매년 동해안별신굿

현대 종교와 유사한 샤머니즘
미신으로 배척해선 안 돼

형식 갖추고 내용 보강해
젊은 층 쉽게 접할 문화로…

심 교수의 발표는 이렇게 이어진다. "결여를 메우기 위해 어떤 욕구가 신성성과 연결돼 굿이라는 의례로 발전했고, 굿에 대한 근원적 확신은 부족했으나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는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게 됐다."

험난하고 변화무쌍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했던 어민들에게는 해일과 침몰을 내재한 바다가 공포와 결여였을 터. 동해안별신굿은 부산 영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 70~80개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풍어제' 형태로 열린다. 주민과 공무원, 선출직 정치인이 어우러져 신나게 논다. 심 교수는 "굿을 문화 이벤트로 보면 전혀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고, 복을 나눠주려고 하는 것이니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샤머니즘은 현대적 종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채희완 민족미학연구소 소장은 전통 샤머니즘을 현대적 종교와 대등하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신의 마음을 인간의 마음으로 받아들여 거룩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인간 활동이 종교활동이라고 봤을 때 이론체계가 없을 뿐 샤머니즘도 민간신앙적 차원의 종교로 봐야 합니다."

학문적 기준에서 종교는 경전, 사제 양성 체계, 교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샤머니즘은 이런 현대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이런 기준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복을 빌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기복신앙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채 소장과 심 교수의 말을 종합하면 샤머니즘을 미신으로 비하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 현실에 맞게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의 하나로 보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공적인 업무에 샤머니즘, 나아가 종교와 신앙이 개입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채 소장은 "우리의 연행문화가 굿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굿을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고 몰아붙이면 모든 예술이 똑같이 매도되는 결과를 낳는다"라며 "우리 집단 무의식 속에는 한민족이 축적한 문화적 유전자가 배어 있기 때문에 민족문화 전승을 위해 어릴 때부터 그런 신명을 끌어내는 놀이나 국악·풍물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심 교수는 "최순실 사태는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 조직에 의존하는 한국의 전근대적 행태 전반에 대한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샤머니즘으로 표상되는 전통문화도 좀 더 형식을 갖추고 문화 콘텐츠화해 젊은이도 거부감 없이 접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오구굿을 연극 '오구'로 만든 이윤택처럼 말이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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