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제 남은 건 '질서 있는' 탄핵의 길뿐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의 공범으로 지목했다.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피의자로 전락한 순간이다. 대통령이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 기밀누설 등 혐의에 연루됐을 뿐만 아니라 공범으로 적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통령이 공정성을 이유로 더 이상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던 2차 대국민 사과 때 본인이 한 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법치'를 금과옥조로 여기던 대통령이 법의 권위에 맞서는 모순마저 보인다.
박 대통령은 2선 후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국정운영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촛불 민심'이야 어떻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차라리 헌법·법률 절차에 따라 논란을 매듭지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 말은 국회에서 절차에 따라 탄핵을 추진하라는 명확한 메시지이다. 정치권이 국정 공백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탄핵만은 피해야 하는 옵션으로 여기고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질서 있는 퇴진'을 물색해 왔으나 이제 탄핵 외에 다른 선택지는 사라진 셈이다.
헌법 제65조 1항은 대통령의 탄핵 요건에 대해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라고 정해 놓았다. 이미 드러난 박 대통령의 혐의만으로도 탄핵 사유는 충족된다는 게 많은 헌법 학자들의 견해이다. 여기다 활활 타오르는 '퇴진·하야' 촛불 민심까지 보태진다.
기왕 탄핵이 유일한 수단이라면 신속·정확한 절차를 진행함이 마땅하다. 그래야 국정 공백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야권에서도 탄핵 목소리가 대세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탄핵 후 총리 추천' '총리 추천 후 탄핵' 등 당리당략에 따라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벗어 버리고 단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때다. 야 3당은 당장이라도 탄핵을 위한 관련 절차에 착수하기 바란다. 촛불 집회 옆에서 얼쩡대며 무임승차하려는 정치적 꼼수는 거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