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성의 예술과 삶] 촛불집회와 문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

영국 문화연구 이론가들에게 대중은 더 이상 멍청하고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니다. 예를 들면 하틀리는 바보상자라 불리는 텔레비전이 담당하는 교육과 지식 전달 역할에 특별히 주목했다. 오락을 시청하는 일에도 어느 정도 독해력이 필요하며 대중들은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인과 대중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없애며 공평한 '문화적 시민권' 개념을 주장한다. 대중문화를 읽는 행위 역시 문화적 실천이라고 주장하며, 민주주의와 오락의 합성어인 '오락 민주주의'라는 독특한 개념까지 꺼내 들었다. 스튜어트 홀을 비롯한 영국 문화연구 이론가들은 대중문화 속에 능동적 소통의 씨앗과 저항의 언어가 숨어있는 것을 그냥 스치지 않았다.

프로야구 경기 관전에 있어서 관중들이 감독의 입장에서 내리는 가상의 작전 지시도 마찬가지다. 특정 구단 감독의 작전을 분석하고 안타까워하며 대안을 내놓는 것 역시 '갇힌 구경꾼'이 아니라, 어떤 현상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것이다.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촛불집회에서 인기 가수들이 시민들과 어울리면서 공연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민들과 함께 일궈내는 공감력은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지난날의 딱딱한 집회 현장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유네스코는 문화를 '어떤 사회나 집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독특한 영적, 물질적, 지적, 정서적 특성들의 총체적 복합체'로 정의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촛불집회에서 보여주는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 행사들은 유네스코의 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문화는 매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마주'하는 존재다. 현실의 절대화된 의견들을 상대화시키며, 구상화된 딱딱한 언어들을 추상화시킨다 .

이번 촛불집회에 나타난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보면서 문화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결국, 문화적인 것은 점잖고 우아한 어떤 게 아니라, 지극히 저항적이며 구체적이란 것을 이번 집회는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pts@busan.com


박태성

문화부 선임기자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