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박 대통령, 물타기 비난 속 '엘시티'로 국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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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공사 현장의 모습. 이 사업의 시행사 실소유주인 이영복 회장 등은 500억 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횡령하고 정관계 유력 인사에 로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엘시티 사업은 해운대해수욕장 해변에 101층 복합시설 1개 동과 85층 주거시설 2개 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부산일보 DB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 철저한 수사와 연루자 엄단을 지시하면서 부산지검의 엘시티 수사가 순식간에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최순실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대통령이 물타기 비난을 무릅쓰고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 한다는 반발과 함께 대통령 지시의 배경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쏟아진다.

뜬금없는 "철저 수사" 촉구
野 "본인 조사 솔선수범을"

■"본인 수사부터 성실하게 받으라"

야권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돼 검찰 조사 요구를 받고 있는 시점에서 엘시티 엄정 수사 지시를 지시한 것에 대해 즉각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퇴진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철저한 수사와 연루자 엄단을 지시한 것은 어불성설이자 가당치 않다"고 비판했다.

앞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회의에서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정치인이 (엘시티 사업에) 개입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엘시티 시행사 회장 이영복(66·구속) 씨를 지목해 "도피 중인 이 회장이 '최순실 계'에 어떻게 매월 곗돈을 납부했는지를 시작으로 법무부의 허가 과정 등까지 이번 의혹은 또 하나의 최순실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원내대표가 이번 사건을 대통령과 연관된 비리인 것처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김현웅 법무부장관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 측근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니까 철저히 수사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도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며 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췄다. 새누리당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또하나의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야당도 '최순실 사태'와 연관시켜 불신을 키우기 위한 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는 일은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시 배경 두고 온도 차

여야의 공식적인 반응과는 별개로 당과 지역구에 따라 분위기는 미묘하게 엇갈린다. 엘시티가 있는 부산 지역구를 중심으로 여야를 막론한 전·현직 정치인들이 엘시티 의혹에 다수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시중 정보지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당 '번개 촛불' 집회에 참석해 "엉터리처럼 지역이 부산이니 야당도 적당히 연루돼있을 것이라는 정치공세에 선동될 국민이 아니다. 우리 당의 그 누구도 부패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없다는 걸 약속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핵심 관계자도 "박 대통령이 여야를 동시에 겨냥해 꺼내든 카드라는 얘기도 도는데, 그렇다면 더욱 비겁한 물귀신 작전이 아니냐"며 반발했다.

반면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이날 페이스북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이라면서도 철저한 수사 지시에 대해 "낭보이다. 바로 그것을 저는 원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부산 지역구 의원이 없는 국민의당이 엘시티 수사 결과에 따라 대선 국면에서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심리가 깔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가 엘시티 비리에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민주당 주류 친문(친문재인)계와 새누리당 비주류를 동시에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엘시티 비리 의혹의 핵심인 엘시티 시행사 회장 이영복 씨가 검사들에게도 각종 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꺼지지 않는 터라 박 대통령이 엘시티 철저 조사 지시를 통해 자신의 조사를 압박하고 있는 검찰에게도 시그널을 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엘시티 인허가, 특혜와 정관계 로비 의혹 등에 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혐의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단서가 확인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권기택·김종우·최혜규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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