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용과 이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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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서울경제팀장

전혀 연관이 없고, 이미지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연상된 것은 서울 친구의 엉뚱한 얘기 탓이다. "한국의 최대 기업인은 이재용이고, 부산 최고 사업자는 이영복이다."

술자리이니까 나올 수 있었던 말. 맞지도 않다. 엘시티의 이영복 회장은 요즘 최고 핫한 인물은 맞지만 부산 최고 사업자는 결코 아니다.

기업인 중 핫한 이재용과 이영복
사업체 위기 속 뒤바뀐 듯한 언행
강한 메시지 필요한 이재용 '주춤'
참회해야 할 이영복은 강성 발언


근데 아무 연관이 없긴 하지만 공통점이 없지는 않다. 두 사람 모두 말이 많지는 않고, 최근 검찰과 맞닥뜨렸다는 점에서. 또 두 사람이 이끄는 업체도 요즘 위기국면이다. 미치는 파장도,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엄청나다. 매출 300조 원의 삼성이 발을 잘못 디디면 한국 경제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엘시티는 부산 경제를 선도하는 해운대의 대표적 건축물인데, 잘못되면 해운대경제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

삼성은 요즘 '나쁜 일은 겹쳐 온다'는 말이 딱 맞다. 불과 3~4달 만에 삼성 이미지는 말이 아니게 추락했다.

14일에는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벽까지 검찰조사를 받고 나왔다. 올 7월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내용 조사야 다른 그룹 총수들도 받았으니 별스러울 게 없다. 근데 삼성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실소유주인 독일 비덱스포츠에 35억 원을 송금한 건 성격이 좀 다르다.

이달 초에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당했고, 삼성의 대관 업무 사령탑인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출국 금지됐다.

그 이전에는 갤럭시노트7 폭발사고가 지구촌의 화젯거리가 됐다.

이영복 회장의 청안건설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영복은 이재용과 같은 금수저가 아니다. 험하게 사업을 해 온 만큼 구속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에 '부산판 수서사건'이라 불린 다대·만덕지구 택지전환 사건으로 감옥에 간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때의 위기는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어렵다.

두 사람의 대응은 다르다. 연일 계속되는 악재에도 이재용은 조용하다. 그는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취임하면서 '이재용 시대'의 개막을 넌지시 알렸을 뿐이다.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있는 만큼 이재용이 아직도 목소리 내기를 꺼리는 것 같다"는 말이 나돈다.

하지만 장강의 물결은 역풍에 밀리지 않는 법,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3세 경영은 이미 시작됐다. 하만(Harman) 인수가 대표적인 예다. 뒤로 물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48세. 이재용의 나이도 적지 않다.

관건은 이재용 시대를 스스로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다. 삼성의 보호막에 기대 연착륙을 바라기는 어렵게 됐다. 경영학자들은 시련의 시기에 이재용이 전면에 나선 게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과연 역풍을 이기고 따낸 성공은 더 빛날 수밖에 없다.

재계에선 삼성의 전통이 되다시피 한 '선언'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83년 반도체 사업에 승부수를 던진 '도쿄 선언'. 1993년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의 경영이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재용이 주춤하는 사이 이영복이 "죽을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겠다"며 임팩트가 강한 발언을 던졌다. 다대·만덕 사건에서 로비설과 정·관계 인사 개입설이 난무했지만 끝까지 입을 다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침묵하겠다는 것이다. '뽀대'는 나지만 '빗나간 의리'다. 이영복은 참회하고 로비 내역을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강한 의지력의 발언은 이영복이 아니라 오히려 이재용의 몫이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한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 같은 명확한 메시지로 현재의 위기를 정면돌파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의 배역이 바뀌었다.

jhwa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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