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톡] 공간은 의식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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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순실 사태는 공간과의 연관성을 언뜻 떠올리게 한다. 권력의 중심공간에 놓여 있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의 바람직하지 못한 공간 구조가 결국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촉발하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우선 청와대는 위치가 논란거리다. 청와대가 위치한 장소는 일제강점기에 경복궁 위쪽 총독 관저를 지을 터에 세워 그 자체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지우기 위한 것이었다.

건축가 승효상은 청와대를 일러 "전형적인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 같은 모습"이라며 "경복궁을 격하시키려는 터여서 그곳은 불순한 터"라고 말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영국 총리 관저는 일반 주택가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백악관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일반 관공서 건축물들도 우리같이 으리으리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겸손하고 소박하다.

청와대는 조선왕조 시대의 전통 기와 건축 형식을 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성은커녕 출발부터 중화주의 사상이 깔렸다는 비난을 여기저기서 받았다. 예컨대 빨강과 황색은 중국 황실을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우리나라가 자신을 낮춰 푸른 색깔의 기와를 얹었다는 것이다. 안을 들여다봐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과 회의실은 '소통 불가'를 외치는 듯, 위압적이며 권위적인 모습이 뚜렷하다. 공간구조도 폐쇄적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 형식 양식인 소통과 열림의 미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신 시대 때 만들어진 국회의사당은 네 명의 건축가가 합작으로 설계했다. 하지만 다들 본인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원래 제출된 안은 돔은 없고 열주(列柱)만 있는 그런 제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에서 돔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내부 공간과는 별개의 모양이 하나 얹혔다.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듯한 권위적인 열주는 거기에 존재하는 사람들마저 권위적으로 만들었다.

사적이며 둔탁하게 밀폐된 공간에서는 불순한 권력모의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공간의 왜곡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그 사람들의 왜곡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왜곡은 모든 방향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스트레스와 압력으로 가해진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뿐이겠는가. 부산시청을 포함한 부산의 관공서 건축물들은 예외 없이 권위적이며 폐쇄적이다.

그런 공간에 입성하면 제법 순수한 사람이라도 변형주의를 거쳐 왜곡된 권력자가 된다. 어떤 권력자든 국민과 마음을 열어 놓고 싶다면 공간부터 열어 놓는 창조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위압적인 공간에서는 위압적인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공간은 이데올로기와 의식을 지배한다. 박태성 선임기자 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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