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굿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샤머니즘의 일종인 무속신앙의 뿌리는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과 인간의 매개 역할을 하며 '무사안일'을 기원했던 제례가 그 기원이다. 이 때문에 고조선의 단군이 '무당의 원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고려시대까지 성행했던 무속신앙은 유학, 기독교 등이 유입되면서 차츰 찬밥신세로 변했다. 특히 1970년대 박정희정권 시절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무속은 급속히 위축됐다. 마을 초입마다 있던 성황당도 대부분 이때 철거됐다.

그러나 민중 속에 깊이 뿌리내린 무속신앙은 잡초처럼 생명력이 질기다. 우주선이 달나라에 갔다 오고 AI(인공지능)가 인간을 대신하는 첨단과학의 시대지만 무속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심심찮게 점집을 찾을 수 있고 깊은 산속마다 굿판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 무속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의 수는 우리나라 인구의 약 0.5~1%(25만~50만 명)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 의식 속에 원시의 욕망과 공포가 남아 있어서일까, 문명과 현대 종교가 인간에게 참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 때문일까.

사실 굿을 주재하는 무당의 길은 멀고 험하다. 신내림을 받는 강신무가 되기 위해선 지독한 신병(神病)을 이겨 내야 한다. 신병을 얻으면 갑자기 원인 모를 병을 앓기 시작하며 불면증이나 정신착란에 빠지기도 한다. 일반적 의술로는 전혀 효험이 없다. 신병 진단을 받으면 신령을 정식으로 받아들이는 내림굿이라는 입무(入巫) 의례를 거쳐 무당이 된다. 내림굿 이후에도 상당 기간 내림굿을 해 준 '신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의례의 절차나 방법을 학습해야 비로소 진짜 강신무가 탄생한다.

'국정 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 때문에 무속이 새삼 장안의 화제다. 최 씨가 한 번에 200만~300만 원짜리 굿을 했다는 소문에서부터 최 씨와 그의 부친인 고 최태민 목사의 무당설까지 온갖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굿판이 벌어졌다거나 장관 임명에 무당이 개입했다는 소문도 유포돼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대한민국에서 굿판을 벌이거나 무당이 된다고 해서 흠 될 것은 없다. 다만, 만에 하나라도 국정 운영에 무속이 끼어들었다면 이는 낭패다. '선무당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속담이 생겨나는 건 아닌지, 경계할 뿐. 윤현주 논설위원 hohoy@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