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 칼럼] 앵그리 화이트(분노한 백인)와 '촛불'
/윤현주 논설위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유력 언론사도, 여론조사기관도, 유명 애널리스트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누를 줄은 상상을 못했다. 지난해 4월 클린턴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부터 그의 백악관 입성은 떼어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인권 변호사, 주지사 부인,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이라는 화려한 경력의 클린턴에 비해 고만고만한 공화당 후보들은 '정치적 난쟁이'처럼 보였다. 하물며 최종 경쟁자가 된 트럼프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데다 막말, 여성 비하, 성추문, 부동산 졸부 등 흠투성이였다.
미국 대선 트럼프 당선 이변은
소외된 저소득 백인들 분노 때문
英 브렉시트·필리핀 두테르테 등
세계를 휩쓰는 '분노의 정치학'
박 대통령 하야 '촛불 민심'에
청와대·정치권 민감하게 반응해야
이번 미국 대선은 '분노의 정치학'이 통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지자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모르는 우리 나라(Our Unknow Country)'라는 제목으로 기고문을 올렸다. 그는 "끔찍한 밤이다. 단지 트럼프가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쇠락한 중서부 지대(러스트 벨트) 백인 계층이 얼마나 깊은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침묵하는 저학력·블루칼라 백인들의 분노(앵그리 화이트)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무엇에, 왜 분노했을까. 미국식 자본주의의 질주에 의한 양극화와 중산층의 몰락,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대량 실업이 분노의 도화선이 되었다. 기성 정치권은 '자본주의 이후의 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 관행을 답습하는 데 머물렀다. 트럼프는 빈자들의 욕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당신들의 자동차 산업을 멕시코가 빼앗아 갔다. 그걸 되돌려주겠다"고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이었던 러스트 벨트를 공화당 표밭으로 갈아엎는 기폭제가 됐다.
'분노의 정치학'은 이미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읽힌다. 지난 6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도 기층민의 분노가 도화선이었다. 국민투표 전 브렉시트 안이 통과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필리핀 국민이 대선에서 두테르테라는 극단주의자를 선택한 배경도 엘리트 정치인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일상화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였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분노는 마그마 수준이다. 작금 대한민국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국가 기능이 거의 마비됐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서 보좌하던 인사들은 줄줄이 쇠고랑을 찼거나 검찰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수사의 칼날은 대통령을 향해 접근 중이다. 대통령은 하야나 탄핵 압력에 직면했고 분노의 촛불이 방방곡곡에 타오르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대규모 민중 총궐기대회가 예고돼 있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의 결말은 과연 희극일까 비극일까.
분노는 기대가 실망으로, 희망이 좌절로 전이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촛불 분노는 '원칙주의자'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기대한 박근혜 대통령이 무원칙하게 권력을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나눠준 데 대한 실망의 표출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음에 대한 좌절의 표현이기도 하다. '분노의 정치학'은 지난 4·13총선에서 이미 정치권을 휩쓸며 여소야대 국회를 탄생시켰으나 대통령과 여당은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했다. 이 점이 촛불의 숫자를 더욱 늘려주는 동력이 됐다.
미국이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는 트럼프 하기에 달렸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와는 달리 전 국민을 통합하고 '세계 대통령'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에 기여했던 분노의 에너지는 언제든지 트럼프 자신에게 향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노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분노를 잘 조절하면 긍정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만 조절에 실패하면 곧장 폭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
세계사적 대변화의 시기에 대한민국호(號)의 좌표는 과연 어디쯤인가. 저 타오르는 촛불 분노를 추슬러 역사 발전의 긍정 에너지로 삼아야 마땅할 터이지만 청와대도 여도 야도 그럴 역량이 없어 보이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권은 사리사욕·당리당략을 던져 버리고 촛불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촛불은 큰불로 번져 정치권,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을 회복불능 상태로 태워버릴지도 모른다. hoho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