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신발 한 짝의 의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난해 고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한 짝이 김겸 미술품 복원가에 의해 복원되었다. 1987년 6월 9일, 당시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한열은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을 맞았고, 한 달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7월 9일, 국민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전국에서 100만여 명이 넘는 추모 인파가 몰렸다. 운구 행렬은 그의 모교, 신촌 로터리, 서울광장을 거쳐 고향인 광주의 전남도청 앞, 그의 고교, 5·18묘역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고, 결국 시민들의 요구에 독재정권이 굴복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얼굴에 피를 흘리는 이한열 열사와 그를 뒤에서 부축하며 껴안은 남학생을 그린 커다란 걸개그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당시 이한열이 신었던 운동화는 삼화고무에서 나온 흰색 '타이거' 운동화였다. 운동화 왼짝은 시위 도중 벗겨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병원 응급실에 남겨진 건 오른쪽 한 짝이었다. 살상 무기인 물대포(살수차)를 사용하는 현 정부의 진압 방식도 그렇지만, 당시의 시위 진압은 특히나 폭력적이고 위협적이었다. 행진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정부가 거침없이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둘렀다. 시위 현장마다 주인 잃은 신발들이 도로 위에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올해 출간된 김숨 소설가의 는 고 이한열 열사가 남긴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열사의 누나에 의해 유품으로 보관되다가 신촌의 이한열기념관에 전시 중이던 운동화가 28년 만에 원형 그대로 복원된 것이다. 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처럼, 시종일관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L의 운동화'가 복원되는 세심하고 미학적인 과정을 묘사한다.

"그러니까 L의 운동화는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L의 운동화를 신고 다녔을까요? 그 운동화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지난달 31일, 검찰청사로 향하던 최순실 역시 역사적 의미를 담은 신발 한 짝을 남겼다. 그날 '최순실 신발'은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검은색 단화 밑창에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그 신발은 왼짝이었고, 단종된 72만 원짜리 명품 '프라다'로 밝혀졌다. 사방에서 몰려든 취재기자와 시민들에게 떠밀려 경황이 없었을 최순실은 고가의 신발이 벗겨졌는지도 모른 채 쫓기듯 검찰청사 안으로 사라졌다.

타이거 운동화와 프라다 신발 한 짝. 이한열 열사와 최순실이 각각 남긴 신발은 시대와 역사를 대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열사의 희생을, 다른 하나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상징한다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1987년 이한열의 운동화는 '우리 모두'의 신발이었다. 반면에 2016년 최순실의 신발은 무능한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특권층의 부패를 상징한다.

"쪽팔려서 못 살겠다." 많은 사람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부끄러워하고 쪽팔려 하고 있다. 이민 가고 싶고,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거의 언제나, 시민들의 치욕과 희생을 자양분 삼아 한 단계씩 성장해왔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이 그랬다.

지금 시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연일 밝혀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추악한 민낯을 보며 제2의 6월항쟁을, 제2의 4·19혁명을 예감하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시민들의 힘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를, 소망한다.

황은덕

소설가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