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어느 쾌락주의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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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옛날 가난한 양반 두 사람이 어쩌다 쇠고기를 사러 갔는데, 백정 주인더러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라고 하대한 자는 딱 한 근만 받고 "박 서방, 한 근만 주시지요"라고 높임말 쓴 이는 안심 두 근에다 부록으로 뒷고기까지 얹어 받았다는 푸줏간 주인 박상길 씨 이야기는 요즘 유치원 아이들도 다 안다. 이처럼 말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엄청 다른 결과를 내게 되니, 말을 적절히 가려 쓸 줄 알아야 현명한 사람, 실리를 챙기는 똑똑한 멋쟁이로 대우받게 마련이다.

가령 나같이 사십 년 훈장질을 마치고 이제 막 퇴직을 한 자가 어느 날 아내와 겸상으로 저녁을 먹다가 "여보, 난 이제 쾌락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소!"라고 선언했다 치자. 그 순간 "이 노무 영감탱구가 미쳤나? 쾌락은 무슨 쾌락!"이라는 불호령과 함께 그는 주책없이 불륜을 갈구하는 비도덕적인 짐승이라는 낙인을 안은 채 여생을 비참하게 보낼 것이 틀림없다. 길고 지루한 데다 윤리의 가면까지 쓰고 살아야 했던 일개 평교원의 일상을 통쾌히 벗어나 니체의 선언대로 이제 탈도덕의 초인적 삶을 구가하고자 했던 당초의 순수한 뜻은 온데간데없고, 쾌락의 깊은 본뜻을 곡해하고 남편 제우스를 위시한 모든 남성을 바람둥이로 몰아붙이는 여신 헤라의 불방망이 세례만 남은 것이다.

인간이라면 불쾌 대신 쾌 원해
쾌는 사는 이유이자 삶의 목표
건강한 쾌락 인정해야 살맛 나


그러나 만약 "여보, 이제 난 남은 인생을 당신과 함께 오로지 즐겁게만 살 결심이오!" 했다 치자. 분명 그는 기대했던 즐거움은 물론 분외의 쾌락도 함께 누릴 것이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은 쾌락과 즐거움이라는 두 단어를 구별해 받아들이는 청자(聽者) 아내의 언어 감각과 그 청자를 배려해 적절히 단어를 구사하는 화자(話者) 남편의 언어능력에서 비롯된 차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어리석은 자는 아무렇게나 입을 놀리다가 멸망을 불러들인다"라는 잠언이 나오며, 불경은 "말을 가려 쓸 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痴] 중의 으뜸이다"라고 타이르는 것이다. 우리 동네 먹자골목 주막집 벽에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됩니다"라는 만고의 진리가 버티고 있는 것도 저간의 사정을 웅변한다.

서양 쾌락주의(hedonism)의 어원은 그리스말 hedon에서 나온 것으로 지금 영어의 즐거움(pleasure)과 같다. 쾌락이라 하면 술, 마약, 육욕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굳이 떠올리는 것은 우리의 언어 습관일 따름이다. 지고의 쾌락은 정신적인 것이라 말한 사람은 금욕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다. 나중에 벤담의 공리주의적 쾌락설까지 덧붙여지면 무엇이 쾌락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지만, 결국 원리는 하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불쾌 대신 쾌를 원하니, 쾌는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삶의 목표다.

동양에서 쾌락을 철학적 원리로 승격시킨 사람은 송 유학자 소옹(邵雍)이었다. 평생 벼슬을 마다하고 촌구석에 틀어박혀 살면서 게으르고 일 없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며 자기 집을 편안한 오두막이란 뜻의 안락와(安樂窩)라 이름 짓고는 한거(閑居)와 자락(自樂)을 생활의 모토로 삼았다. 이름을 알리려 애쓰지 않고, 자연 속에서 풍월에 정회를 붙이며, 남 접대나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가난도 걱정 않고,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숲이나 강가를 거니는 생활이 바로 그가 지향했던 삶이었으며,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을 그는 '늘 유쾌하게 사는 사람' 즉 쾌활인(快活人)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쾌락이라면 뭔가 습기 차고 음험한 상상을 떠올리며 손사래를 치지만 사실 살맛 나는 사회란 개인의 건강한 쾌락을 인정하고 북돋아 주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앞서 단어 하나를 잘못 선택함으로써 아내로부터 모진 봉욕을 당한 불쌍한 퇴직 교원이 사십 년간 몰래 꿈꾸었던 쾌락도 기실 소옹의 자락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제 세상 추잡한 꼴 억지로라도 멀리하면서 남 눈치 안 보고 나도 사는 기쁨을 누리련다. 쾌락이 그대와 함께! 또한 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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