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의 세상 속으로] 안전 없이는 부산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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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원 논설위원

일사불란한 조직은 당장은 효율적일지 모르나 부패에도 일사불란하다는 사실을 최근의 '최순실 게이트'가 새삼 일깨운다. 중앙집권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의 일사불란한 국정 체계는 자칫하면 중앙은 물론이고 지방까지 부패의 사슬에 단단히 옭아맬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지금은 중앙 정부 차원의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형국이지만 지방이라 해서 '비선 실세'의 영향력이 통하지 않을 리 만무한 까닭에 부산에서도 유사한 부패 스캔들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호남 안의 판소리도 서편제와 동편제가 서로 사뭇 다른데, 나라 안 여러 지방의 실정과 살림살이를 무시하고 중앙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잣대로 국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나온 정부의 '11·3 부동산 대책'만 해도 그렇다. 서울과 수도권, 세종시, 부산 등 총 37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서로 다른 부동산 규제 카드를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수도권과 지방의 심화한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부동산이든 아니든 하나의 잣대로 나라 안을 두루 꿰는 정책은 더는 효율적일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규제보다 진흥에 초점 맞춘
일사불란한 중앙의 원전정책
역대급 대형사고 부를 수 있어

부품 비리 이어지는 고리원전
고준위방폐장 지정 우려도
부산시·정치권 대책 내놓아야

일사불란한 국정이 안전 문제와 맞물리면 상상할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더욱 주목을 필요로 한다. 대표적인 게 원자력발전소다. 실제 한국의 원전 정책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다 못해 편향적이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곧잘 받는다. 원자력 '진흥'만 있을 뿐 '규제'를 담당하는 기구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원자력안전위원회나 부산시의 원자력안전과 등에서 비록 '안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규제 정책은 찾기 어려워 '안전=진흥'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 중앙에서는 고구마 줄기 캐듯 비선 실세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세계 최대 원전단지라는 부산에서는 원전을 둘러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왔다. 낡은 것으로 새것을 대신하여 끼워 넣는 원자력 부품 비리 같은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최근에는 과잉 출력이 문제 되었던 신고리 3호기의 부품 돌려막기에 이르기까지 풍문으로만 떠돌던 의혹이 하나하나 사실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금 건설 중인 원전까지 포함하면 고리 일대에는 총 10기의 원전이 가동되는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원전 문제로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원전 안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처리 시한도, 유효 기간도 따로 없는 영구 미제에 가까운 문제여서 지역사회에 끼칠 영향은 거의 핵폭풍급에 가깝다. 폐로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탓에 내년 6월 폐로에 들어가는 고리 1호기가 고준위방폐물처분장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일찍부터 제기되어 온 터다. 현재는 원전 부지에다 사용후핵연료를 쌓고 있는 실정이어서 '원전 부지=고준위방폐장'이라는 등식도 성립해 온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마저도 포화 상태가 되는 시각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는데, 중앙정부는 방폐장 후보지가 마땅치 않으면 직권으로 상정하겠다며 밀어붙일 태세다.

이제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다. 중앙정부의 원전 정책에 맞서 어떻게 시민의 안전을 지킬지 밝힐 때가 온 것이다. 고리 1호기 폐로 이후의 로드맵은 무엇이어야 마땅한지,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고준위방폐장을 부산에 허용할 것인지 말지 솔직한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원전지역 활성단층에 대한 시민의 불안이 상존하는 만큼 고리원전 단지의 지진 안전성에 대한 조사는 물론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원전의 안전을 제고할 수 있을지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원전 문제는 부산이 더는 피해 갈 수 없는 현안 중의 현안이 되었다. 경주 지진의 영향으로 그동안 고리원전을 머리맡에 두고 살던 부산 시민들의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부산에서 살아가려면 안전이 최우선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안전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부산을 찾지 않게 되고, 남은 사람들도 결국엔 부산을 떠나게 된다. 안전 없이는 부산의 미래도 없는 셈이다.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은 중앙정부의 일사불란한 원전 정책에 언제까지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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