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책임총리제와 민주적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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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욱 변호사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주권의 원칙', 즉, 모든 권력은 그 원천이 국민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무총리 내정과 함께 국무총리에게 책임총리로서 대통령의 권한 중 일부를 책임지고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책임총리제는 과연 대한민국 헌법상 국민주권의 원칙과 부합하는가.

헌법상 '국민주권의 원칙'
국민적 합의 바탕 통치권 의미

국민 선택 받지 않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 행사 정당성 결여

책임총리제 정당성 확보 위해
국민 대표 국회와의 협의 필수


국민주권의 원칙은 통치권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함을 의미한다. 통치권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통치권의 창설은 물론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능은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통치권 행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으로부터 선거나 투표를 통해 그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기관만이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와 통치기관의 헌법적 권능은 비례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헌법기관의 헌법적 권능이 더 커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직선제 대통령이 간선제 대통령보다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았으므로 직선제 대통령의 권한이 더 커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헌법 원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책임총리제가 과연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 국민은 단 한 번도 국무총리를 투표로 선출하거나 그 임명에 동의한 적이 없다.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대통령제를 취하면서도 부통령제가 아닌 국무총리제를 선택한 것은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대통령 궐위 시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하게 함으로써 통치권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에 공백 상태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궐위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통치권 일부를 국무총리가 행사하도록 하는 책임총리제는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무총리가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주권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이론적 난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활동했던 김병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청와대는 김 총리 내정자가 야권 인사이고 책임총리라고 설명한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 내정자를 부인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하며 김 총리 내정자의 국회 임명동의를 강요하고 있다.

아무런 직책도 없었던 최순실 씨가 비선 실세로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자,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 조사도 받을 것이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민심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산적한 국내외 현안 문제 해결은커녕 외교를 비롯한 국정 전반은 이미 마비 상태이다. 이러한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대통령 권한의 실질적 행사를 보장한 책임총리제 도입을 전제로 한 김 총리 지명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 진행 절차가 너무나 일방적이다. 투표나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었던 국무총리가 국정을 책임지고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한다는 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전혀 없었다.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권한을 비록 일부이더라도 행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국무총리가 책임총리로서 통치권의 일부를 행사할 수 있도록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대의기관인 국회와의 협의를 통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정국에서도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명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비상시국에서 책임총리제의 도입과 이를 위한 국무총리 후보의 임명에 있어서는 국회와의 협조가 더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책임총리가 될 국무총리 지명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아무런 논의 절차가 없었다. 여당의 대책회의 과정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소식을 들은 여당 의원들이 당혹해하는 모습을 본 국민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야당에서도 최순실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국회와의 협의를 통해서만 사태 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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