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칼럼] 어렵고도 추한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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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논설위원

경제는 흐름이다. 강물이 제대로 흐를 수 있도록 하고 적당한 양이 산업용수, 식수로 쓰이게 하는 치수와 다르지 않다. 급한 현안이 발생해 비상 대처를 할 수는 있으나 이는 결국 단기적인 대책이 될 개연성이 높아 장기적 시각에서 볼 때 두고두고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의 이런 특성은 노련한 조율사를 필요로 한다. 패기나 의욕보다는 지식과 경험이 더욱 중요할 때가 많다. 이렇기에 정부의 경제 정책 결정자 임명이 비정상적 연고를 통해 이뤄지면 결국 사달이 나고 만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사례는 역대 정권 말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쉽게 떠오르는 게 김영삼(YS) 정부 시절이다. 당시 YS의 차남 김현철 씨는 일명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온갖 정보는 물론 인사까지 관여했던 그는 결국 구속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후 YS의 레임덕은 본격화됐다. 이러한 불행은 대통령 한 명에 그치지 않고, 결국 컨트롤 타워 부재에 따른 경제 몰락으로 번져 국민 모두에게 깊은 시름을 안겼다. 기업들의 부도 도미노는 1997년 11월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이어져 버렸다.

후진적 경제 약탈적 준조세
기형적 가계부채 증가 일로
고질 해결 없인 백약이 무효

'최순실 블랙홀'로 국정 마비
경제는 빨려 들어가면 안 돼
'식물 경제팀'은 국민의 비극


이런 YS의 실정 덕택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김대중(DJ) 정부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면서 환란을 이겨 낸 그이지만, 권력형 비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집권 말기에 세 아들이 얽힌 비리와 각종 게이트로 국정 동력을 잃으면서 나라 살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역시 임기 말에 부동산 가격 폭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반드시 잡겠다는 그의 발언을 비웃듯 아파트값이 매번 올라 국민적 신뢰를 잃기도 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과거 정부들이 겪었던 정권 말기 혼란의 재판처럼 보인다. 정치는 그래도 절차적 민주주의라도 확보했지만, 경제 시스템은 아직 구태가 여전하고 되레 퇴보한 측면까지 보이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계적 경제퇴조라는 불가피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난관을 뚫고 나가는 것 또한 정책 결정자의 임무이다. 억수가 퍼부어도 미리 방책을 세워놓은 곳은 침수가 되지 않는 법이다.

이번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사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아직도 정치권력에 의한 약탈적 준조세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단시간 내에 미르·K스포츠 재단에 800억 원 가까운 돈을 선뜻 내놓았다. 이 중에는 보험 성격을 띠거나 특혜를 바라고 낸 돈도 많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경유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 위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는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지금 가계부채 규모는 연말 1300조 원 도달이 예상될 정도로 급속히 늘고 있다. 게다가 부채 증가는 비은행권 생계형 대출, 저소득층 대출, 개인사업자 대출로 집중되면서 경제 왜곡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상태에서 부동산값 이상 폭등으로 불로소득자가 늘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경제가 이처럼 비정상적이고 불투명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투기자본이 득세하면 백약이 무효이다.

한국경제는 생산, 투자, 소비 등 경제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선 실정이다.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풍랑을 만난 셈이다. 이럴 때 경제수장은 금융·재정·통화 정책의 신축적 운영으로 국내 불안 요소와 대외 충격을 최소화하려 노력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좀비 기업을 정리하는 과감한 기업구조조정도 단행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전통적인 경제적 수단들을 써 봤자 정경유착이나 소득 불균형같이 기울어진 지반을 바로잡지 않고는 건물을 바로 세울 수 없는 법이다.

지난 2일 임종룡 경제부총리가 내정됐다. 야당이 일제히 '최순실 2기 내각'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임 내정자의 정상적인 역할 수행은 안갯속이다. 그러나 "성장을 위한 부동산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의 일성은 일단 마음에 든다. 그는 또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계기비행이 아닌 시계비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제 앞날이 암흑 같다는 뜻이다.

현재 민간인 국정 농단 의혹으로 식물정부까지 걱정될 정도다. 이런 상태가 '식물 경제팀'으로 이어져 경제 아노미 사태가 초래되어선 안 된다. '최순실 블랙홀'에 경제만은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방어막을 단단히 쳐야 한다. 정치권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든다는 확약 아래 새 경제팀의 출발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제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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