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폭력은 '인류의 절반' 억압하는 중대 사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아주 친밀한 폭력/정희진

'10만 832명'. 최근 5년간 가정폭력사범으로 검거된 인원이다. 이 중 아내가 당한 폭력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실제로 2014년에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1만 7557명 중 70%(1만 2307명)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남편 학대(6.7%·1182명)의 10배 이상에 달한다.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유명한 여성학자 정희진이 '아내 폭력'(남편이 아내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 <아주 친밀한 폭력>을 펴냈다. 심층 인터뷰와 상담, 문헌 연구 등 1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책은 아내 폭력이 어떻게 자행되고 사회적으로 묵인되는지를 어머니나 아내가 아닌 '여성'이라는 인권의 시각으로 접근해내고 있다.

저자는 우선 가정 폭력이 가부장적 가족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모든 아내가 다 맞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품는 데 대해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과 관련된 이슈는 언제나 사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편견의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전 국민의 1% 정도가 절도 피해를 입었다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 절도범의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한 문제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분석되고 국가 사회적 대책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내 폭력'은 거의 모든 통계에서 50% 이상 경험하는데도 여전히 개인적인 일로 간주된다."

저자는 아내 폭력을 '인류의 절반을 억압하는 중대한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여성 폭력은 사적 영역의 사소한 문제'라는 인식은 사회가 남성만을 보편적인 인간으로 인정하고 남성의 폭력을 방조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과 같은 남성 중심의 공적 기관이 남성 중심의 가정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아내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려면 그 피해가 끔찍하고 심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이른바 '고통의 정치학'인 것이다. 자식을 위해 길게는 수십 년간 폭력을 견디며 죽음의 문턱을 드나든 여성들, 가해자 아닌 가해자로 전락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 등 책 전반에 실린 생생한 인터뷰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왜 못 나오는가"라는 질문에 "일상적으로 폭력당하는 사람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 질문"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부분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은 저자가 2001년 석사논문을 토대로 쓴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의 개정판이다. 첫 책이 나온 뒤 15년이 흐른 지금도 책 내용 전반에 걸친 인터뷰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덧붙여진 수치와 통계가 보여주는 가정 내 아내의 위치가 제자리걸음이라는 현실이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을 짓누른다. 정희진 지음/교양인/280쪽/1만 4000원. 윤여진 기자 onlypen@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