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삽은 삽, 농단은 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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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①1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의 10월말 정기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율은 10.4%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정율은 무려 81.2%로 최고치를 갱신했다.

②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한 남성이 굴삭기를 몰고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정 모 씨는 경찰에 체포된 뒤 "최순실이 죽을죄 지었다고 했으니 내가 죽는 것을 도와주러 왔다"고 진술했다.

잠깐 겨울 날씨를 보인 11월 초하룻날, 기사로 살펴본 풍경 두 가지다. 이런 풍경에, 교열(어문)기자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①에 나온 '긍정율, 부정율'은 '긍정률, 부정률'이라야 한다. 접미사 '-율/-률'은 원리만 알면 헷갈릴 이유가 없다. 열쇠말은 '이율/선율/법률'. 즉, '이·선·법'만 기억하면 된다. 받침이 없거나(이-율) 'ㄴ' 받침(선-율)일 때는 '-율'을 쓰고, 그 밖의 다른 받침일 때(법-률)는 '-률'을 쓰기 때문. 이 원리는 '-열/-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나열/균열/행렬).

또, 같은 기사에서 '갱신'은 '경신'이 옳다. 어떤 분야의 종전 최고치나 최저치를 깨뜨렸을 때는 '경신'으로 써야 한다.

②에 나온 '굴삭기'는, 일단, '굴착기(掘鑿機)'로 고쳐야 한다. '굴삭기(掘削機)'가 일본에서 온 말이기 때문. 일본에서는 상용한자에 포함되지 않은 '鑿' 대신 발음이 [사쿠]로 똑같은 '削'으로 대체해 쓴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는 '굴삭기'는커녕 '굴삭'이라는 말도 없었는데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물론 굴삭은 '땅파기'로, 굴삭기는 '굴착기'로 순화하라고는 했지만….)

한데, 이 굴착기는 땅을 파는 기계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불도저나 동력삽, 버킷 종류나 관정굴착기처럼 구멍을 뚫거나 파낸 암석 따위를 처리하는 기계를 통칭한다. 그러니 단순히 땅을 파는 기계로만 좁혀 부를 때는 오히려 외래어인 '포클레인'이 더 맞춤한 것.(고유명사이던 포클레인은 이제 일반명사가 됐다.) 이게 싫다면 '삽차'로 불러도 좋겠다.

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라가 엉망이다 보니 '4대강 살린다'며 삽질하던 직전 대통령이 더 훌륭해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삽질은 삽질이고 국정농단은 국정농단일 뿐. 그러니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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