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아르카나 임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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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가 쓴 <연대기>를 보면, 권좌를 노리고 있던 갈루스와 그의 정적(政敵) 티베리우스 황제 간에 일어났던 암투의 과정에서 갈루스가 '아르카나 임페리'(arcana imperii)를 간파하려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말은 직역하자면 권력의 비밀 혹은 통치의 비밀 정도가 될 것인데, 국가사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관장하는 최고 통치자의 절대적 권위를 상징한다.

황제의 특권과 유사한 개념으로 쓰였던 이 말은, 13세기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법학자들을 거쳐 17세기 초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에 이르면 절대왕권의 신정적 성격을 가리키는 의미를 담게 된다. 즉 정부란 왕-사제 동일체로서의 통치자와 그 대신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일종의 비밀체로서, '국가의 신비'(mystery of state)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은 그들의 인격과 관계없이 바로 그 자체로서 정당하다는 것이다.

중세적 '권력의 비밀' 한국서 부활
공무원은 하인…국정, 비선에 농단
권력 사유화 막을 성찰 필요한 때


전통적으로 통치자들이 규정한 금지된 지식에는 아르카나 임페리뿐 아니라 아르카나 데이(arcana Dei)와 아르카나 나투라이(arcana naturae)도 들어 있었다. 전자는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는 바울의 유명한 언명이 내포한 함의를 통해 신에 관한 앎의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었고, 후자는 자연이 보여 주는 놀라운 현상 역시 신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웅변하는 또 하나의 '비밀'이라는 것이 근대 초 기독교 세계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갈릴레이와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가장 먼저 금기의 벽이 뚫렸고, 전자도 계몽사상과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상당 부분 그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카나 임페리만은 여전히 살아남아 마치 독버섯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이 의회와 법치에 기초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상에서 위정자들에게 아직도 그들만의 '아르카나(비밀)'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백 개의 얼굴을 가진 아르카나 임페리를 통해 끊임없이 초법적 위치를 견지하려 드는 권력자들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 답의 중요한 한 단서를 칸트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일찍이 "대중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이성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계몽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즉 각자의 지성을 용기 있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칸트는 결코 현대적 민주주의의 신봉자가 아니었고, 대중의 적극적인 정치 개입에는 더더욱 부정적이었지만, 그의 말에 담긴 함의를 현재적으로 되새기자면 공익적 정보 공개와 그에 기초한 시민적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절대군주를 자처하며 그 이론적 근거까지도 제시하려 했던 제임스 1세는 한 연설에서, 권력의 비밀은 오직, 마치 지상에 주재하는 신처럼 국가의 신비를 관장하는 사제-왕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왕의 권력은 의회의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유의 언어는 신비라는 것을 통치 행위의 본질로 보고, 권력과 그에 따른 복종의 의무에 대한 어떤 합리적 설명도 배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권력의 원천이 왕에게서 의회로 넘어감에 따라 통치 행위를 신비로운 것으로 보는 관점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믿지 못할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미 역사적으로 소멸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중세적 아르카나 임페리가 21세기 초엽의 한국에서 부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연륜의 일천함을 감안한다 해도, 명색이 민주주의인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원시적'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공무원은 청지기나 하인으로 전락하고 국정은 '비선'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농단당하는, 이러한 권력의 사유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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