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준의 세상 속으로] '제2의 최순실'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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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논설위원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막장드라마 같은 '최순실 파문'은 그 결말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온갖 괴담이 난무하며 대통령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최 씨와의 끈끈한 인연을 두고 대통령의 심리·정신 분석과 급기야 사이비 종교까지 거론된다.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죽을죄를 지었다"던 최 씨는 검찰 조사에서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고, 검찰의 허술한 대응에 따른 증거 인멸과 말 맞추기로 진실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고 규명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아무런 공적 지위도 없는 개인이 국정에 단순한 개입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주무르다시피 한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모두가 말한다. 나라의 품격이 실추된 것이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드러난 현상으로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랜 동안 계속될 수 있었는가이다.

부끄럽고 참담한 '최순실 파문'
권력 통제 시스템 문제 드러내

권력은 원래 타락하기 마련
인간의 선의만 기대할 수 없어

위험 신호에도 비상벨 안 울린
국가 시스템 근본적 재검토 필요


가장 쉬운 답은 '대통령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빠서, 혹은 대통령이 잘못해서 최 씨를 비호하거나 최소한 최 씨의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혹은 대통령의 잘못을 막아야 할 사람들이 비겁하거나 탐욕을 부렸기 때문이라는 답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대통령만 바꾸면 된다는 대답이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잘하면 된다는 대답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경우가 특히 심하기는 하지만 공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아닌 최측근이 국가 최고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문제는 역대 대통령 모두에게 있어 왔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민주국가는 권력을 나누어 상호 견제와 감시를 통해 균형을 이루도록 국가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법과 제도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는지를 늘 감시하며, 이를 어기면 수사해 처벌하는 기관도 두고 있다. '권력은 원래 타락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는 절대권력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민주주의의 본질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파문'은 감시와 견제라는 정상적인 국가 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작은 경보음이 몇 차례 울리기는 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도 그렇고 승마협회를 감사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권력의 비리를 수사해야 할 검찰은 권력의 시녀 역할에 앞장섰고, 청와대 내부에서 검증하고 감시해야 하는 민정수석은 오히려 권력 남용과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 받았다. 대통령 측근 비리 감찰을 위해 새로 도입된 특별감찰관은 오히려 국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역공을 당해 자리에서 내려왔다. 새누리당에도 한때 측근으로 불리다 내쳐진 이들이 적지 않다. 권력에 대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시범케이스 몇 번에 모두가 납작 엎드렸다. 최 씨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세우는 데 새누리당이 극력 반대해 결국 무산시킨 것은 입법부도 통제의 손을 놓았음을 드러냈다. 그 결과 대통령 옆에는 '이러면 안 된다'며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비상벨이 울려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거나 고장으로 치부하고 꺼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 아무리 큰불이 나도 비상벨은 울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비선 실세'라는 이름으로 국정을 농단한 최 씨와 그것을 허용 또는 방치한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어떤 식으로든 법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와는 별도로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만든 국가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가장 큰 자리는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좋은 대통령이 뽑히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나쁜 대통령이라도 권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은 원래 비겁하고 욕심이 많은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아무리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 제2, 제3의 최순실이 또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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