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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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추한 단어가 바로 농단(壟斷)이다.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혐오스러운 단어다. 원래 농단은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의 뜻이었다. <맹자> '공손추' 장에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물건을 사 모아 비싸게 팔아 상업상의 이익을 독점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서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로 변했다. 국정 농단은 한마디로 국정을 입맛대로 가지고 놀면서 교묘하게 단물을 빼먹고 권세를 부린다는 말이다.

예컨대 장관이나 돼야 명찰 달고서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청와대 정문을 명찰도 안 달고 무람없이 오가는 것, 그러다가 애먼 경비가 사람을 못 알아봤을 때 노발대발 화를 내고 그 책임자까지 갈아치우게 하는 것은 확실히 세도다. 국민들은 그 문화적 정체가 뭔지도 모르겠는 '문화계 황태자'가 아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다가 제 힘에 스스로 감복한 나머지 "내가 직접 장관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하는 오만 방자함. 딸을 선수로 키우기 위해 'K' '미르' 사발통문을 돌려 대기업에서 770여억 원을 짜낼 수 있는 막강 실력. 옛 자료를 뒤적일 필요 없이 신문을 받아쓰기만 해도 농단의 현란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국민 앞에서 갈라진 헛헛한 목소리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해 놓고선 "나는 죄를 지은 게 없다"는 변명도 확실한 농단이다.

대통령의 말과 연설은 국정의 핵심이다. 그 권력을 대통령 스스로 장악했던 때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였다고 한다. 한 전직 청와대 연설 비서관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찰력은 깊어 생각의 과녁이 너무 멀었다고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생각의 과녁은 가까웠으나 항상 그 과녁이 변화 발전하면서 움직였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의 국정 스타일이었다. 그 전과 그 후의 대통령들의 연설과 말은 '밑에서' 만들어 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밖에서' 만들어 준 농단의 사례가 지금 불거진 것이다.

검찰 청사 앞에서 취재진과 시위대에 둘러싸인 여인의 신발 한 짝이 나뒹굴었다. 70만 원짜리 명품 '프라다'다. SNS에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비튼 '최순실은 프라다를 신는다'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농단하면 농단에서, 높은 곳에서 굴러떨어진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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