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최순실 의혹과 힙합 열풍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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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경제부 차장

패스트푸드점 2층은 500원짜리 아이스콘이나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든 고등학생, 대학생들로 가득하다. 록발라드에 이어 힙합 음악이 나오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흔들흔들 리듬을 타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죽을 힘으로 달려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째려봐… 밑바닥 이게 나의 현주소….' 힙합 가수 비와이의 '더 타임 고즈 온(The Time Goes On)'이다.

대다수 기성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일 것이다. 요즘 10대와 20대에겐 이미 익숙한 문화다. 지난 몇년 새 청년층의 대부분은 힙합 애호가로 변신했다.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을 꼬집는 힙합 가사에 열광한다. 탄탄한 음악성으로 무장한 힙합가수들은 걸그룹을 제치고 음원 차트 상위권에 포진했다. 바야흐로 힙합의 시대. 이 열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힙합은 자수성가와 탈출을 꿈꾸는 빈민가 흑인 문화에서 유래됐다. 연애도, 취업도, 결혼도, 당장의 즐거움마저도 아득한 이 땅의 청년들도 성공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미국 힙합 스타들처럼 멋진 차를 타고, 금목걸이와 금시계를 찬 채 금의환향하길 원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청년층은 비록 대리만족에 그치더라도 현실의 답답함을 힙합으로 분출하며 자신들의 꿈을 간신히 보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듬으로 소통하며 이 힘든 시대를 함께 견디자는 무언의 약속이 힙합 열풍 속에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상대의 단점을 거침없이 지적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힙합 특유의 솔직함과 파격, 타인을 존중하는 '리스펙트' 문화도 인기몰이의 비결일 것이다.

절망이 희망을 잠식할수록 힙합 비트는 한층 빨라지고, 가사는 더욱 직설적으로 변한다. 사회에 대한 분노, '노력과 성공'이 비례하는 상식을 갈망하는 절박함 등으로 가득하다.

나는 왜 '승마 특기생'이 되지 못했을까요. 흙수저의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국가가 우리를 사랑하긴 하나요.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접한 청년들은 이렇게 반문하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한다. 물론 청년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미 힙합 열풍은 10~20대를 넘어 30~40대로 확산 중이다. 지도층의 잇따른 비상식, '끊어진 성공 사다리', 빈부 고착 등에 실망한 국민이 늘수록 힙합 대열에 동참하는 물결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년들이 힙합을 부르고, 춤을 추며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상당수 기성세대와 지도층은 "저것도 음악이라고…"라며 여전히 혀를 찬다. 세대와 계층 간의 벽이 너무 높고 두껍다. 누군가를 헤아리려면 그 사람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한다.

장기 불황과 해운업 구조조정 등에 겹쳐진 이번 최 씨 파문으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데 이어 국정은 마비 상태로 치닫고 있다. 취업난은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부모의 돈과 권력이 자녀의 실력이 되는 불공정 사회의 실상을 또 확인한 청년들은 극도의 허탈감을 호소한다. 지도층은 청년들이 힙합에 실어보내는 분노에 찬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한다. 청년들의 아픈 마음을 다독일 진정성 있는 장기 대책이 시급하다.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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