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날' 지구대 야간 순찰 동행 취재] 성추행범 쫓다 돌아왔더니 왁자지껄 취객들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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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11시 도시철도역에서 성추행범을 잡기 위해 신고자와 통화를 하고 있는 부산연제경찰서 연일지구대 소속 박현미(31) 순경. 다음 날 새벽까지 박 순경의 바쁜 일상은 이어졌다. 조소희 기자

밤이 깊어지자 부산 연제경찰서 연일지구대는 아예 현관문을 반 정도 열어 뒀다. 문을 발로 차거나, 열리지 않는다며 시비를 거는 취객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술이 문제지, 사람이 문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본보 취재진은 제71회 경찰의 날(21일)을 맞아 이틀에 걸쳐 최일선 지구대의 '야간 순찰'에 동행했다.

■보이스피싱부터 무전취식까지

18일 오후 9시. 박 모(25·여) 씨가 흐느껴 울며 지구대 문을 열었다.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박 씨는 예비 신랑과 함께 모아 온 결혼자금을 보이스피싱으로 모두 잃었다. 착실하게 모은 돈을 한 통의 전화로 잃은 박 씨는 한숨을 쉬다 눈물을 닦다를 반복했다.

발로 문 차고 들어와 시비
밤 되자 아예 현관 열어 둬
사제총 충격에 "잠 못 들 듯"

오후 11시. 지하철에서 여고생의 엉덩이를 만진 성추행 용의자가 연산역에 하차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올해 경찰시험에 합격해 연일지구대에서 근무하는 박현미(31·여) 순경도 선배 경찰관과 함께 출동했다. "체크무늬 남방, 하늘색 바지." 박 순경은 신고자가 스마트폰으로 보낸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반복해 웅얼거렸다. 박 순경은 출구에서부터 개찰구, 남자화장실까지 곳곳을 쏘다니며 용의자를 찾아 나섰지만 현장 검거에 실패했다. CCTV 확인 결과 용의자는 이미 지하철역을 빠져나간 뒤였다. 박 순경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선배인 조무용 경위가 교통카드 내역을 조회하면 용의자를 잡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이들은 다음 날 아침 부산교통공사에 보낼 협조 공문을 작성하기 위해 지구대로 돌아왔다.

연제구 연산동에 위치한 연일지구대는 관할 구역 내에 주점이 밀집해 있다. 연산교차로가 있어 교통사고도 잦다. 치안 수요가 많다 보니 근무 인원은 69명으로 부산 시내에서 가장 많다.

19일로 넘어가 자정부터 오전 2시까지 연일지구대는 취객으로 북적거렸다. 술에 취해 친구의 뺨을 때린 사람부터, 맥주 2병 값을 내지 않고 도망가다 잡혀 온 사람까지 이곳을 찾은 취객들은 종종 경찰을 '임마' '○○놈' 이라고 불렀다. 지구대 소파에서는 알싸한 소주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사설업체 장비는 점점 좋아지는데…

20일 오전 4시 연일지구대는 온통 19일 저녁에 일어난 서울의 총기사고 이야기였다. 동료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아서다. 한 경찰관은 "(경찰의 사망)소식을 들으면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관의 안전 문제가 화두였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형광색 경찰 조끼는 가벼워 보여도 무게가 2㎏에 이른다. 권총부터 교통 딱지를 끊을 수 있는 미니프린터까지 경찰 조끼에 달린 9개의 주머니에는 각종 물건들이 매달려 있기 때문. 한 경찰관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의 장비만 봐도 가볍고 튼튼한 방탄복에, 용의자 위치 추적도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연일지구대를 이끄는 조기종 경정은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공동체의 안전을 지킨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버틴다"며 "시민들의 한마디 격려와 따뜻한 시선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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