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세상편집] 실시간 검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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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디지털미디어본부 부장

'로또 1등 당첨번호 쏟아진 부산 감만동에 가보았더니, 가스 냄새 이어 해운대서 풍선 발견한 다음 로또 샀다는데… 처갓집 양념치킨 건너편 로또 712 당첨번호조회 17 20 30 31 33…'

암구호 같지만, 지난 7월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어느 인터넷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기사 본문은 제목에 조사 몇 개를 더하고, 로또 1·2등 당첨판매점을 길게 덧붙인 정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부산 전역을 휘감고 지나간 뒤였고, 해운대에서 타이머가 장착된 삐라운반용 대형 풍선이 발견됐다는 소동에 놀랐던 때였다. 감만동 복권판매점에서 판 로또가 1등에 당첨됐다는 자료도 공개됐던 시점이었다. 당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단엔 가스 냄새, 해운대 풍선, 로또 따위가 걸려 있었다. 페이지뷰를 노리고 실시간 검색어를 맥락 없이 짜깁기한 '낚시 기사'였다.

언론사의 일용할 양식이 된 실시간 검색어가 만든 부끄러운 풍경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건 실시간 검색어의 세계에선 일상이다. 전날 밤 드라마에 나온 연예인의 이름은 으레 실시간 검색어 상단을 차지하고,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죽음처럼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온종일 실시간 검색어가 요지부동이다. 느닷없이 지진에 식겁한 뒤로는 중국 지진, 일본 지진 가릴 것 없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한다. 연예인 스캔들이 뜨면 십중팔구 연관 검색어까지 상단을 점령한다. 그럴 땐 유통기한이 몇 분에 불과한 기사들이 득달같이 포털사이트를 도배한다. '기레기'를 양산한다거나 시답잖은 이슈로 중요한 이슈를 덮어 버린다는 지적은 온당하다.

실시간 검색어는 민심이다. '최순실'과 '송민순', 두 프레임이 맞붙은 현 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승마선수 한 명 키우려고 대학과 대기업, 전경련, 청와대까지 국력을 총동원해 지원에 나섰다는 의혹에 실시간 검색어는 그 이슈를 호명했지만, 회고록에서 촉발된 색깔론은 온갖 권력이 지원사격을 해도 기시감 탓인지 실시간 검색어 시장에선 맥을 못 춘다.

법과 원칙이 누구의 목에 걸면 값비싼 목걸이가 되고 누구에겐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는 불의의 나라에서, 거덜 난 경제에 성과연봉제와 노동개혁이란 처방전만 고집하는 외눈박이 나라에서, 전염병이 돌고 지진이 나고 태풍이 닥쳐도 컨트롤타워가 침몰한 속수무책의 나라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놓고도 부끄러움보다 뻔뻔함이 미덕이 된 절망의 나라에서, 그나마 살아 있는 건 실시간 검색어다. 그렇게라도 위로하며 살아야 할까?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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