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파업과 전경련의 이상한 모금에 대한 상식적 생각
경제학 상식을 문득 되돌아보게 하는 두 사태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공공 의료부문 노동조합과 화물연대의 파업이고, 다른 하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의 비정상적 모금과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두 경제주체 조직과 각기 관련되어 있다. 전자는 노동력의 판매자, 후자는 노동력의 구매자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이들 조직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고 따라서 위의 두 활동도 바로 그런 이익을 겨냥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각 경제주체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이들 행위는 모두 자본주의의 원리에 부합한다. 경제학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이처럼 동일한 교과서적 경제행위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이상하다. 전자에 대해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비난을 하는 데 반해 후자에 대해서는 침묵과 은폐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전경련의 모금 활동은 우리에게 별로 낯선 일이 아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익숙하게 봐 온 풍경이다. 이들 행위의 사회적 의미는 이미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로 이어진 불법자금 모금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불법이며 반사회적 행위다.
그런데 전자의 파업에 대해서는 아직 상식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경제학 교과서를 거스르는 정부의 태도가 이를 대변한다. 파업에 대한 상식을 다시 돌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비난처럼 파업은 흔히 이기주의로 비판 받는다. 그런데 경제학 교과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상태를 만든다고 가르친다. 소위 공리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철학적 토대다. 그래서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정부의 태도는 사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파업의 결과를 보면 그것이 과연 이기적인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파업기간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며 노동조합 간부와 파업 참가자들은 해고·징계를 받기 일쑤이다. 경제적 이익은커녕 손실을 초래한다. 따라서 파업을 이기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불법·반사회적 전경련 모금
침묵·은폐로 일관하는 정부
노조 파업엔 '이기주의' 비난
주체별 이익 추구 인정이 상식
"파업권 없는 교섭은 집단 구걸"
독일 판결도 색깔론으로 볼 텐가
파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개념이 필요하다. 하나는 이것이 교환에 기초한 순수한 경제적 행위라는 점이다. 교환은 두 사람이 각자 이익을 위해 주고받는 행위이다. 손해가 예상되면 당연히 교환에 응할 필요가 없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손해를 예상하고 판매를 중단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제3자가 개입할 수 없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파업에 절대 개입할 수 없다. '노사자율주의'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교환에는 두 개의 권리가 충돌한다는 점이다. 교환에 나서는 두 사람은 각자 판매와 구매의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동등한 두 권리가 충돌할 때는 '힘이 사태를 결정짓는다!' 교섭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자본가에게 직장폐쇄, 노동조합에게 파업이라는 수단을 합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정부의 개입은 바로 이 수단을 노동조합에게서만 빼앗는 것이다. 한국에만 있는 '조정권'이라는 비민주적 시대의 유산이다. 경기에서 심판이 한 선수는 공격을 못하게 하고 다른 선수만 공격하도록 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노사관계의 모범생인 독일의 노동법원은 파업에 대해 이런 판결을 남겨 두고 있다. "파업권 없는 단체교섭은 집단 구걸과 다름없다!" 노동자들을 구걸로 내모는 정부의 태도는 아무래도 경제학 교과서의 상식을 벗어난 것 같다. 정부가 다시 상식을 찾도록 할 수는 없을까? 마침 내년에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상식을 갖춘 사회로 거듭나기를 선거에서 기대해 본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