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로 만나는 두 도시 이야기] 젊은 에너지 '활기찬 노랑' 물결 … 전통과 공존하는 '편안한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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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과 서독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갤러리가 됐다. 1.3㎞에 달하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작품 위에 자유분방한 그라피티가 더해져 그 자체가 살아있는 예술이 된다.

유럽은 도시마다 색깔이 뚜렷하다. 같은 나라의 도시라도 그럴진대 나라가 달라지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도시에 대한 시민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초가을, 유럽 안에서도 색깔이 뚜렷한 수도 두 곳을 다녀왔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핫'하고 젊은 도시 독일 베를린, '세계의 수도(Capital of the world)'라는 별명이 손색없는 영국 런던이다.

베를린이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뜨거운 '노란색' 도시라면, 런던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젊음을 잃지 않는 차가운 '빨간색' 도시였다. '베를리너'와 '런더너'의 태도도 도시의 색깔과 다르지 않았다. '도시 성애자'는 그만 두 도시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베를린
이층버스도 지하철도 '노랑'
그라피티 가득 '자유'의 냄새

런던
고층 빌딩 꼭대기까지 '가든'
미술에서 연극까지 문화 넘실

■상반된 매력이 공존하는 수도 베를린


베를린은 여러모로 부산과 비교할 거리가 많다. 인구가 350만 명으로 부산과 비슷한 수준이고, 면적은 부산보다 좀 더 넓은 편이다.

역사적으로 부산이 피난도시로 온갖 문화가 섞일 기회가 있었다면, 베를린은 동독과 서독이 나뉘는 중심 도시로 지금도 동독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문화 도시다. 반면 베를린은 한 나라의 수도이자 내륙 도시고, 부산은 제2의 도시이면서 바다에 접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독일 안에서도 산업이 발달해 부자 도시로 손꼽히는 프랑크푸르트와 뒤셀도르프를 거쳐 베를린에 도착하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일단 도시가 컬러풀했다. 시내에는 노란색 이층 버스가 다녔고, 지하로 내려가니 지하철인 S반과 U반 역시 노란색 열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거리의 선거 포스터조차 예술적 기운이 느껴졌다. 정치인 얼굴 사진을 이용하기보다 그림으로 표현한 컬러풀한 포스터가 눈에 더 많이 띄었다.

공기에 젊은 에너지가 떠다니는 느낌, 베를린의 첫인상이었다. 흔히 베를린을 '가난하지만 섹시한(poor but sexy)' 도시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른 유럽 도시보다 물가가 싼 데다, 역사적으로도 베를린은 소수자들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인구의 10% 이상이 문화예술계 종사자라고 하니 도시의 색깔이 그냥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사진은 '유태인 박물관'의 전시물. 나치에 의한 유태인 희생자의 얼굴을 표현했다.
좀 특별한 베를린을 느껴 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의 숨겨진 명소를 둘러보는 자전거 투어(Berlin on Bike)를 신청했다. 오후 3시에 집결해 3시간 30분 동안 관광객은 잘 모르는 베를린의 뒷골목을 탐방하는 코스였다.

가이드는 10여 년 전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앤디로 "축구 유학을 왔다가 베를린의 매력에 빠져 눌러앉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베를리너는 친절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만, 누구보다 규제를 싫어하는 반항아들이다.

같이 투어를 신청한 10여 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힙스터가 주목하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위주로 둘러봤다. 넓은 공원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구 동독을 선전하는 동상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당장에라도 갱스터가 튀어나올 것 같은 주택가도 지났다. 질서 없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라피티 범벅인 건물 안에서 태연히 아이를 안고 나오는 젊은 부부의 모습, 그 자체가 베를린이었다.
 
남겨진 베를린 장벽에 아티스트들이 그림을 그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답게 그림 위에 누군가 그려 놓은 그라피티가 가득했다. 철제 펜스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표현하려는 욕구를 가진 베를리너를 막을 수 없어 보였다.

베를린에 대안 문화만 있는 건 아니다. 어렵게 당일표를 구해 '베를린 필하모닉홀'에 공연을 보러 갔다. 세계적인 지휘자와 연주자가 모이는 곳이다.

이날 지휘자 이반 피셔가 이끄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풀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는데, 유독 플루트 연주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열아홉 살의 한국인 플루티스트 김유빈이 그날 실제 공연 참여로 테스트를 받은 끝에,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수석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유빈의 연주도 이반 피셔의 지휘도 대단했다. 베를린은 클래식과 대안 문화가 공존하는 뜨거운 노란색 도시였다.

■쿨함을 잃지 않는 전통의 수도 런던
트래펄가 광장은 런던 그 자체다. 내셔널 갤러리, 빨간색 이층 버스, 런던 택시인 '블랙캡' 까지 런던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누구보다 영국을 사랑한 미국인 기행 작가 빌 브라이슨은 말했다. "나는 런던이 전 세계 모든 도시들을 통틀어 최고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물론 런던에는 뉴욕처럼 짜릿하고 흥겨운 활력도 없고, 시드니의 하버브리지 같은 다리나 멋진 모래사장도 없으며, 파리처럼 넓은 가로수 길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런던에는 도시를 더욱 근사하게 만드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면 푸른 녹지가 그렇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이 대목을 읽고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런던의 매력을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브라이슨의 말처럼 적어도 런던에는 142개의 공원과 600개가 넘는 광장이 있다.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인 리젠트 파크를 거닐고 있노라면 여기가 대도시인지 잊을 정도로 고요하다. 얼마나 녹지를 사랑했으면 고층 빌딩인 '워키토키 빌딩' 꼭대기에도 '스카이 가든'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런더너다.

이 같은 런던의 자연 친화적 특성이 귀한 여름휴가를 런던에서 3년 연속으로 보낸 이유 중 하나다. 1년 만에 방문한 런던은 브렉시트의 여파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분주했다.

미술관과 뮤지컬을 즐기려는 목적에 맞게 이번에는 숙소를 트래펄가 광장 바로 앞에 구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에 비하면 가성비가 좋은 런던정경대(LSE) 기숙사를 빌렸다. 좁디좁은 숙소였지만 뮤지컬 극장이 모여 있는 레스터 스퀘어, 코벤트 가든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라 만족도가 높았다.
사진은 런던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A)' 내 정원.
새로운 곳을 가기보다 철저히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국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를 시작으로 현대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영국 작가 작품만을 모아 놓은 '테이트 브리튼', 수준 높은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등 갤러리 순방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테이트 모던'의 마크 로스코 작품만으로 채워진 방에서는 왠지 모르게 감정이 벅차올랐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 앞에선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서 있었다.

영국 미술관, 박물관은 정부 정책상 세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기에 무료다. 시민이 자연스레 예술을 접하게 하고 적극적인 예술의 소비자가 되게 만드는 영국의 정책에 부러움이 커졌다.

수준 높은 웨스트엔드의 공연도 여행을 풍성하게 해 줬다. 로알드 달 원작 '마틸다'의 무대 장치와 효과는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았고, 뮤지컬의 고전 '오페라의 유령'은 왜 장수 뮤지컬인지 스스로 증명했다.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흥미로운 일'이라는 제목의 연극은 작은 무대를 활용해 얼마나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준 재밌는 작품이었다.

타워 브리지, 세인트폴 대성당, 런던아이, 빨간색 이층 버스 같은 전통적인 상징물이 여전하지만, 런던은 전통 속에 쿨함을 잃지 않는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베를린과 런던을 여행하면서 과연 부산의 색깔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베를린·런던/글·사진=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여행팁

■교통편

아직 한국과 베를린 직항 항공편은 없다. 인천~프랑크푸르트 직항편(약 11시간 10분 소요, 대한·아시아나·루프트한자 항공 매일 운항)을 이용해 기차로 베를린으로 이동(약 4시간 10분 소요)하거나, 저가항공을 이용(약 1시간 10분 소요)하는 방법이 있다. 혹은 인천~런던 직항편(약 11시간 40분 소요, 대한·아시아나·영국 항공 매일 운항)을 이용할 수 있다. 유럽은 도시 간 열차, 저가항공이 발달해 방문 도시에 맞춰 미리 계획을 짜면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베를린과 런던은 비행기로 약 2시간 거리다.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웰컴 카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지하철 AB존 기준으로 무제한 이용 가능하고 박물관과 주요 관광지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48시간권 19.5유로, 72시간권 27.5유로, 4일권 31.5유로다. 런던에서는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산 뒤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는 1~2존 내 버스, 지하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7일 사용권(32.40파운드)을 추가 구매하는 게 이득이다.

■음식

베를린에 가면 '커리 부어스트'를 먹어 보길 권한다. 껍질이 있거나 없는 독일식 소시지와 감자튀김 위에 케첩, 카레 가루를 뿌린 간식이다. '베를리너 필스너' 같은 베를린 지역 맥주와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다.

런던은 음식이 맛없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맛집과 유명 셰프가 모이는 곳이다. 런던 한복판에서 취향에 맞게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또 샌드위치, 스콘, 디저트로 구성돼 가격이 비싼 '애프터눈 티'보다는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딸기잼, 홍차가 단출하게 나오는 '크림 티'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조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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