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원의 영화와 삶] 다소 쓸쓸하게, 그러나 변함 없이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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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앙'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스물한 번째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렸다. 올해 영화제에는 남다른 긴장감이 흐른다. 거의 2년에 걸친 'BIFF 사태'로 인해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고, 개최 확정 이후에도 보이콧 선언을 철회하지 않은 영화인들이 적지 않았다.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관 개정은 극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사태를 불러온 정치인은 사과하지 않았고 영화제를 이만큼 키워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후 지금 재판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영화제 측도 보이콧을 풀지 않은 영화인들을 섭섭하게만 여기지는 않을 것 같다. 참석을 거부한 이들은 그간 BIFF에 가해진 깊은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흠집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남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파국은 면했지만,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관객의 대열에 서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의 주요인물들이 보이콧이라는 방식으로 영화제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안, 영화계의 이름 없는 개미군단의 일원인 나는 꾸준히 객석에 가 앉았다. 여기에 대단한 결단은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영화제에 예년 못지않은 편수의 영화가 출품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말하자면 보이콧한 영화인들도 자신의 영화는 보내왔다. 그러니 그 영화들을 외롭게 따돌리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진통 끝 막 올린 부산국제영화제
상처 회복 위해 더 큰 관심 필요

미얀마 난민 그린 왕빙의 '타앙'
영화제서만 볼 수 있는 영화
BIFF 명성과 권위 다시금 느껴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제의 영화를 본다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하냐고. 영화제 둘째 날, 왕빙의 '타앙: 경계의 사람들'을 보는 중에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영화제 영화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영화는 아주 특별한 체험을 안겨준다. 이를테면 '타앙'은 정부와 권력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 영화, 거대 자본의 힘에서 온전히 벗어난 영화, 심지어는 대중들의 시선에도 가닿기 힘든 영화다.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다.

왕빙은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타앙'에서 그는 내전을 피해 중국 국경 지역으로 넘어온 미얀마 난민들의 고행 길을 따라나선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왕빙의 재능은 고통스러운 것을 볼 만한 것으로 바꿔놓지 않는 데 있다. 덕분에 영화 중간에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말하자면 왕빙의 카메라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비극을 흥미로운 영화적 소재로 착취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존 투쟁이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즐길 만한 구경거리가 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그의 전작들-'바람과 모래' '세 자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도 다르지 않았다. 왕빙은 그의 카메라에 포착된 인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 그들 삶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왕빙 영화의 위대한 면모는 중국 인민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중국에서 그의 영화는 단 한편도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버림받은 아이들, 체제에 희생된 지식인들, 병들고 미친 민중들,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줄곧 카메라에 담아왔고, 중국 정부는 그런 왕빙의 영화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BIFF 사태'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얼핏 본 듯도 하다. 올해 영화제에는 다소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영화제의 영화들은 변함없었다. BIFF의 명성과 권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모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강소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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