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상위 1%에 제대로 낑기려면
/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존경하는 박 회장님. 절묘하게도 김영란법 발효 직전에 베풀어 주신 거한 주연 덕분에 작취(昨醉)가 미성(未醒)임에도 불구하고 엊저녁 발하신 노성(怒聲)이 귓전에 생생해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첩첩산중 깡촌에서 분연히 몸을 일으켜 분골쇄신, 자수성가하신 분더러 돈사장, 쩐회장이라며 비아냥대는 버러지 같은 무리들이야 그냥 싹 무시해 버려도 상관없겠지만, 자본주의 원리도 모르면서 그저 시기심에 불타 무식한 졸부라고 뒷담화를 농하는 먹물들에 대한 회장님의 개탄은 정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지미지당(至美至當)의 말씀이라 사료되는 바입니다.
하나 조선 태조는 몸을 굽혀 산중 승려 무학을 찾아가 해몽을 들음으로써 왕조 창업의 대망을 이루었고, 알렉산더 대왕도 술통에 사는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제자 되기를 청했다 하니, 천하의 대부호 박 회장님께서도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무명 서생의 간곡한 충언을 들으사, 한국의 지도적 계층 상위 1%에 제대로 편입하는, 경상도 말로 "진짜로 낑기는" 방도를 찾아 자손만대 복록을 누리시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용비어천가'에도 군주는 선비를 예로 대하고 공손히 대화하라(禮士溫言)고 얘기했지만, 뭐 이성계처럼 꿇어앉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지도적 계층에 편입하려면
방귀나 트림 등 '구규' 제어부터
침묵으로 천근의 무게 유지해야
회장님은 배가 쑥 나오고 음성도 질그릇 깨지듯 걸걸해 누가 봐도 풍신이 부자다우나, 다만 육신의 구멍, 도교 용어로 구규(九竅)에서 배출되는 기운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노상 체면을 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구나 본인은 그것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알지 못하니 더욱 큰 병통이라 하겠습니다. 골프나 등산 중 앞장서 가면서 뿌웅하고 힘주어 방귀를 뀌거나 고급 레스토랑을 나오며 보란 듯 끄억하고 트림을 하면, 동행이 숨을 참느라 감수해야 하는 고통은 왜놈 순사 나카무라가 유관순 누나에게 가한 물고문의 고통보다 더욱 클 것입니다. 서양 인문주의의 선구자 에라스뮈스도 예절 지침서에서 "공식 석상에서는 가능한 한 방귀를 뀌지 마라. 불가피하면 기침으로 방귀를 감추라"고 조언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식사 중에 부득이 발사할 경우 식탁을 적절히 힘주어 문지르면 그 소리가 피리 소리와 매우 유사해 좌중이 기만당한다는 것을 소생의 경험으로 첨언합니다.
조선 후기 현군 정조의 젊은 총신이자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가 그 유명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가운데 '사소절(士小節)'에서 했던 충고를 유념하십시오. "남이 보는 앞에서는 가려운 데를 긁지 말고, 이를 쑤시지도 말고, 귀를 후비지도 말고, 때를 밀지도 말고, 버선을 벗지도 말고, 이도 잡지 말라." 마지막 말을 제외하곤 마치 회장님을 향한 충고인 양 절절합니다. 지난해 가을 설악산 단풍구경 갔다 오던 길에 버스 안에서 양말을 벗고 앞 좌석에 맨발을 올려놓음으로써 만인의 지탄을 샀던 일을 모르시겠지요. 회장님 회사 버스니 누가 감히 사자 코털을 건드리는 불손을 범했겠습니까. 이왕 코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중세 영국 정치가 더들리가 '왕자를 위한 감계'에서 "사람들 앞에서 콧구멍을 후비거나 코털을 잡아 뽑는 짓은 왕자의 품격을 실추시키는 못된 버릇입니다"고 간언했던 말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는 런던탑에서 도끼로 목이 날아가는 신세가 되긴 했지만요.
또 하나, 이슬람 격언 "침묵은 평화를 낳는다"는 말을 새기십시오. 대부분 회장님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자들은 말꼬투리를 잡는 자들입니다. 말없이 가만히 계시면 다들 천근 같은 무게를 지닌 분이라고 무서워할 텐데 자꾸 아는 듯 나서서 엉뚱한 말을 해대니 그놈들이 속으로 비웃고 뒤로 욕질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와인과 골프에 대해서 말을 아끼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요즘 그 분야에 대해서는 자칭 전문가가 아마존 강물처럼 넘칩니다.
아아! 가슴에 숨겨둔 말을 하고 나니, 제갈량이 '출사표'에서 쓴 것처럼 그동안 받자온 은혜가 가슴에 흘러넘쳐 더 이상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사요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