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짜장면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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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산자락에 자리한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지난해 남구 우암동에서 옮겨왔으니 이사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금정산 숲속 둘레길이 지나가는 이곳을 걷노라면 녹음과 산새의 지저귐에 마음이 즐겁다.

하나,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데가 드문 법. 부산외대를 찾을 때마다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이 이 속담이다. 대학 건물들이 높고 먼 곳에 있어 교문에서 대학본부까지 가려면 몇 번 다리쉼은 예사다. 도시철도를 타려 해도 그 거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러니 부산외대 캠퍼스 방문자의 마음은 양면적이다.

최근 부산외대에서 진행 중인 '짜장면 시위'를 보고 있자니 이 된비알을 오르며 내쉬던 거친 숨의 기억이 새롭다. 시위는 배달음식 교내 반입을 금지한 학교 처사에 대한 항의이다. 학생 몇몇이 피켓 옆에서 배달음식의 대명사격인 짜장면을 먹는 퍼포먼스 형식을 띠고 있다. 먼 일반 식당까지 내려가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니 다양한 음식을 먹게 해 달라는 권리 주장인 것이다.

짜장면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기다. 중국 요리가 한국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철학자 신승철은 사본이 진본을 떠나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는 '시뮬라크르'란 개념으로 짜장면을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이 '자장면'을 올바른 표기법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끝끝내 언어 대중의 방식인 '짜장면'은 되살아났다. 시인 안도현은 산문집 '짜장면'에서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고 쓰며 짜장면 표기를 고수했다.

짜장면은 이처럼 약한 다수의 저력을 단시간 내에 보여 줬다. 이 모습이 극화된 것이 지난 2012년 개봉한 영화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이다. 1980년대에 짜장면 배달원과 여대생의 사랑을 그려 낸 작품이다. 지질하고 못난 사람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변신하면서 견뎌 내는 한국식 춘장의 정신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결실을 낳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외로운 음식이 짜장면이다. 4월 14일 '블랙데이'. 오죽하면 이때 짝을 못 찾아 새카맣게 타 버린 솔로들의 마음이 짜장면으로 표현될까. 부산외대는 청춘들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기 바란다. 학교 측 사정도 있겠지만, 대화하면 풀지 못할 일도 아니다. 자장면을 결국 짜장면으로 만든 그 힘을 거스르기도 어렵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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