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상영작 리뷰] 3. 셔우티옹구안 '윈드-크리스토퍼 도일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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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넘나든 바람 같은 영화인생

'윈드-크리스토퍼 도일의 독백'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윈드-크리스토퍼 도일의 독백'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1952~ )에 대한 헌정 다큐멘터리다. '아비정전'(1990) 촬영을 맡은 이래 '중경삼림'(1994)과 '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와 '2046'(2004)의 수려한 영상미를 구현해 온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동료 크리스토퍼 도일. 그는, 이번에는 카메라의 뒤에서 이미지를 담는 촬영감독이 아닌 피사체가 되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방황을 거듭하면서 세계 속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찾고자 구도의 길을 걸어온 한 예술가의 초상이다.

셔우티옹구안이 크리스토퍼 도일에게 관심을 옮긴 건 '지나간 현재'(2013)에서 차이밍량 감독의 삶과 영화를 다룬 것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에드워드 양과 장애가, 왕가위와 장국영과 교류하고 구스 반 산트와 짐 자무시와도 작업하는 등, 카메라를 들고 동서양을 종횡한 그의 영화 인생은 대만 뉴웨이브의 태동과 홍콩 영화의 전성기에 걸쳐 현대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 출신의 백인이 중화권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부터 크리스토퍼 도일은 실로 이색적인 존재이다. 두가풍(杜可風). 홍콩의 중국인 학교에 입학한 첫날, 시인이었던 선생이 옛 한시를 인용해서 지어주었다는, '신사는 바람과 같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중국식 이름은 도일 자신이 64세의 노장이 되기까지 평생 동안 추구해 온 바를 담은 좌우명이자 '윈드'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반복되는 중심적인 주제)다.

'윈드'의 도입부는 바다와 사막 풍경을 보여주면서 유년기 추억을 이야기하는 도일의 내레이션으로 열린다.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가 자신을 물속으로 던졌던 3세 때의 기억은 세상을 향해 내던져진 첫 경험으로서 도일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성장기였던 1960년대는 자유분방한 히피와 낙관주의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는 지평선 너머에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기에 여행 속에서 참다운 인생의 길을 찾고 싶다는 청년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선원이 되어 바다를 누비고, 히치하이킹으로 시나이 반도를 건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인근에 다다르는가 하면, 언어도 전혀 모르고 영화 제작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서도 영화계에 뛰어들어, 마침내 '해탄적일천'(1983)으로 본격적인 촬영감독의 직함을 얻고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야말로 '바람'과 같이 살아온 삶의 여정이 러닝타임 33분 안에 함축된다. '윈드'는 단순한 회고담 이상의 의미를 관객에게 전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처럼 산조차 옮길 수 있다는 창대한 야망을 품고, 국적 인종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 영화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했던 한 코스모폴리탄의 진면모가 여기에 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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