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의 몰락 부른 '수많은 오판' 복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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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제바스티안 하프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 부산일보DB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상대로 세 차례 전쟁을 치르고서야 건설된 제국. 그렇지만 독일 제국을 건설한 비스마르크가 원한 건 '전쟁제국'이 아니었다. 비스마르크의 당초 목표는 독일 민족만의 작은 통일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 제국은 건설 당시부터 거대 전쟁제국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서쪽엔 프랑스와 영국, 남쪽과 남동쪽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쪽엔 러시아가 버티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진출할 공간이 없는 독일은 본능적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해야만 했다. 이 신생 제국은 주변국들의 동맹이 두려웠다. 연합의 탄생을 막으려면 전쟁도 불사해야 했다. 지정학적 요인과 제국주의. 거기에 민족주의까지 더해지면서 히틀러 치하에서 절정에 도달한 팽창정책과 민족주의는 독일 제국을 종말로 치닫게 했다.

비스마르크의 통일 국가 꿈
지정학적 요인·민족주의…
출발부터 '전쟁 씨앗' 품어

'히틀러=민족 구원자' 오인
독일인의 과오 냉철히 분석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독일 제국의 건설부터 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 '독일 제국 몰락사'를 복기한 역작. 독일 민족이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독일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오판을 했는지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본 책이기도 하다. '독일 제국은 왜 몰락했나.'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파란만장했던 독일의 근현대사 속에서 뚜렷한 맥락을 잡아내 이 질문에 명료하게 답한다.

독일 제국은 민족의 생존을 위해 주변 강대국 동맹을 막으려 분투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영국과 프랑스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미국의 참전까지 불러왔다. 1차 세계대전 전쟁배상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고의로 방치한 결과, 히틀러가 등장했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민족의 구원자로 오인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국가에 의한 합법적 테러가 가해지고, '파괴'를 좋아했던 히틀러는 유대인을 파괴하려 했고, 옛 소련을 파괴하려 했다. 하프너는 '히틀러가 없었어도 아마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만 수백 만 유대인 학살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는 나치의 폭정이 극으로 치닫던 1938년 유대인 약혼자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했다. 본명 라이문트 프레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제바스티안'과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를 조합한 필명으로 저술활동을 했다. 독일에 남아 있는 가족의 피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온 후 옵서버 지 베를린 특파원 등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독일 아벤트차이퉁이 '역사가들이 쓴 책 더미보다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한 책'이라 평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저자가 79세였던 1987년에 출간됐다. 독일 제국의 팽창과 몰락의 비밀을 놀라운 통찰력과 명료한 언어로 파헤친 책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역사 교양서로 평가받고 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안인희 옮김/돌베개/320쪽/1만 5000원.

강승아 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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