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부산여해재단 고문 "충무공 정신, 부산 발전 원동력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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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부산에서 첫 씨앗을 뿌려 전국으로 퍼져나가면, 50년 100년 뒤에는 한국사회가 건강해지지 않겠습니까."

5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부산 이순신학교의 교무실에서 만난 ㈔부산여해재단 김종대 고문(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눈빛이 '이순신' 이름 석 자를 거론할 때마다 반짝 빛났다. '이순신 전도사'로 통하는 김 고문은 이순신학교 개교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40여 년간 이순신 생애 공부
'부산 이순신학교' 개교 이끌어
"그의 정신, 한국병에 특효약"


이순신의 정신을 널리 전파하는 교육기관을 충무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부산에 설립하는 건 김 고문의 숙원이었다. 그는 "임진년 9월 1일(음력) 일어난 부산포해전은 사랑, 정성, 정의, 자력 등 이순신 장군의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전투였다"고 설명했다.

충무공은 한산도대첩 후 왜군에 더 심대한 타격을 주기 위해 솔선수범해 적의 전진기지인 부산포로 출격한다. 전투에 앞서 한 달 가까이 훈련을 하는 등 철저한 준비 덕분에 조선 수군은 부산포에 정박 중인 왜선 100여 척을 깨부수는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정작 이순신은 조정에 장계를 올려 모든 공을 다른 장수와 부하들에게 돌린다.

김 고문은 "이순신은 자발적으로 정성을 다해 부산포해전에 임했고, 사후 공로를 부하들에게 돌리는 등 아랫사람을 배려하고 스스로는 겸손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부산포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고문은 나아가 "부산포승첩에서 나타난 이순신의 마음가짐을 '부산시민정신'으로 내면화해 부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10월 5일 '부산시민의 날'은 부산포해전 승전일(음력 9월 1일)을 기념한 것이다. 이순신학교 개교일을 이날로 잡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김 고문은 1975년 공군 법무관 시절 운명적으로 이순신을 만나 그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다. 정훈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집어든 책이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이었다. 이후 40년 넘게 이순신의 생애와 정신을 공부하며 4권의 책을 펴냈다.

2012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퇴임 후 김 고문의 활동은 더 왕성해졌다. 2014년부터 서울과 부산, 여수에서 '이순신아카데미'를 열어 지금껏 200여 명의 '이순신 지도자'를 양성했다. 이들은 부산 이순신학교와 내년 봄 문을 여는 서울 이순신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김 고문이 '이순신 정신'에 주목해 온 건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한국사회의 병증이 도를 넘었다는 진단 때문이다. 그는 "2년여 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원인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공동체적 가치보다 개인적 가치, 인성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만 추구해 온 '한국병' 때문이었다"며 "400여 년 전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고 공동체를 구해 낸 이순신 장군의 정신은 오늘날 병든 한국사회를 치유하는 '특효약'인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시행된 김영란법도 '이순신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게 김 고문의 생각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지닌 국가관의 기본은 백성(국민)을 위하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1948년 민주헌법이 제정된 뒤에도 70년 가까이 공직자는 '갑', 국민은 '을'인 관계가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김 고문은 "김영란법 덕분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공무원은 국민의 봉사자'란 헌법(제1·7조) 조문대로 공직자와 국민의 관계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됐다"며 "단순히 부패방지를 넘어 우리나라가 진짜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첫 단추를 끼우는 역사적인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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