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이희진 사기 사건의 역사적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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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의 '미시시피 거품'을 풍자한 그림.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하던 이희진이라는 주식 자문가가 얼마 전 구속되었다. 허위 주식정보를 통해 수익을 편취한 사기혐의라고 하는데 대충 알려진 바로도 피해자가 3000명, 피해액은 100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의아하다. 그 사기수법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흔해 빠진 낡은 수법이기 때문이다. 별 볼 일 없는 회사의 싸구려 주식을 사들인 다음 사람들에게 이 회사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속여 고가에 되파는 수법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최근 우리 사회에 넘쳐 나고 있다. 조희팔 사건이나 저축은행 사건이 모두 같은 수법에 의지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들 수법의 의미를 조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들 수법의 역사적인 기원은 1715년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빌미가 된 것은 루이 14세가 유산으로 남겨 놓은 프랑스 정부의 재정파탄이었다. 왕좌를 물려받은 루이 15세는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아 자신의 왕고모부 오를레앙의 섭정에 의존해야만 했다. 재정상황에 고민하던 오를레앙에게 한 사람이 접근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프랑스 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인수할 테니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왕립은행 설립을 허가해 달라고 제안했고 달리 대안이 없던 오를레앙은 이를 받아들였다.

현대 경제 사기수법의 기원은
300년 전 재정파탄 佛 존 로

한탕 대박 꿈에 헛소문 결합
헐값 주식 수십 배 '뻥튀기'

무노동 고수익 꿈이 사기 거름
대박은 타인 노동 가로채는 짓

그런 다음 로는 오늘날 루이지애나라고 부르는 미시시피 강 유역(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다)의 개발권을 독점하고 있던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증권가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루이지애나에 대량의 금과 은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이 모집되었고 주식가격은 발행가의 30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방돔 광장에 자리한 로의 사무실은 주식구입을 애걸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로는 시중에 넘치던 정부채권을 자신의 왕립은행 은행권으로 사들이고 이 은행권을 주식청약금으로 다시 회수하였다.

막대한 프랑스 정부의 부채는 단번에 해결되었고 이에 감동한 오를레앙은 로를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루이지애나의 금과 은이 사실은 풍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왕립은행은 파산했고 로는 프랑스에서 도망쳐 베니스의 한 요양병원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였다. 로의 수법은 이후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대로 답습되었는데 참으로 희한한 일은 그것이 언제나 통했다는 것이다. 당장 프랑스만 하더라도 이삭 페레르 사건이 곧이어 반복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도 싸구려 채권을 대박으로 변신시킨 파생금융이라는 사기수법에 의한 것이었다.

이희진의 사기 사건도 바로 이 로의 수법을 그대로 본받은 것에 불과하다. 실체 없는 대박을 풍문으로 흘린 다음 거기에 몰려든 돈을 그대로 주워 담은 것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수법이 계속 통하는 것일까?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버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고 경제학에서 배운 탓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부가 인간의 노동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분명히 논증하였다. '대박'은 애초부터 타인의 노동을 편취하려는 사기이고 따라서 경제학 본류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속류경제학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로와 이희진은 자신들의 말로를 짐작하지 못했을까? 사기는 결국 들통이 나는 것인데 말이다. "뒷일은 난 몰라!"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팔린 자본가들의 근시안을 비꼬아 내뱉은 마르크스의 이 말은 바로 이들과 속류경제학을 지칭한 것이기도 하다. 그 대박의 속류경제학에 온통 홀려 있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두려워진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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