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울어라, 더 처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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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사회부 부장대우

왜 하필이면 서울에서 가장 먼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해 있었을까.

나와 나의 가족, 나의 친지, 나의 친구들이 터잡고 살고 있는 이 지역을 떠올리노라면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서울의 대척점에 사는 비수도권 주민이 가진 자기비하라고 욕을 해도 좋다. 수도권 블랙홀이 경기도를 넘어 세종시까지 팽창하며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 인재를 집어삼킬 때 부산과 동남권은 너무 멀어 그 블랙홀에 끼어들지 못했다. 이런 이 지역의 숙명과 함께하는 게 이 지역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추석 직전 발생한 지진은 이 같은 현실을 다시금 철저히 일깨우는 도화선이 됐다. 거실에 앉아 지진동의 공포를 온몸으로 겪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밖에 없었던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었으리라. 그렇게 이 지역엔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다지 견고하지 않다'는 트라우마가 남았다. 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여진이 오기 전까지 첫 지진은 추석을 거치며 잊혀 가는 분위기였다. 머리맡 원전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심하게 흔들린 건물의 안전은 문제가 없는지. 이 지역 사람들의 불안이 여진보다 더 컸음에도 대한민국은 서서히 지진을 잊어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만약 첫 지진이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정규방송은 아마도 즉각 중단됐을 터이다. 청와대가 흔들렸다면 아마도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긴급재해대책본부 정도가 꾸려지고 대통령이 즉각 현장 방문에 나서는 등의 조치도 이어졌을 것이다. 내진 관련 예산 우선 반영을 위한 국회 차원의 발빠른 논의도 불문가지다.

비단 지진뿐일까. 최근 한진해운 사태를 처리하는 정부의 모습에서도 이 지역은 타자로 소외돼 있다는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

한진해운 사주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분명히 짚고 가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관문으로서 해운과 항만에 밥줄을 걸고 살아온 부산항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과연 한진해운 해결책을 경제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이 타당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돌입 이후 나타난 악영향이 정부 예측과 크게 달랐다는 점에서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정부 태도는 이번 지진을 대하는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역시 이 지역은 서울에서 너무 멀었다.

'서울에서 멀어 슬픈 이 지역'에는 이제 우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난달 확정된 정부 예산안에는 아직 예비타당성 조사가 끝나지 않은 김해공항 확장 관련 예산이 선반영됐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숱하게 국비예산 책정이 배제된 다른 사업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이는 이 지역 사람들이 신공항 유치 과정에서 정부를 상대로 처절하게 운 결과다. 앞으로도 그만큼 울지 않으면 정부는 수도권 대척점에 있는 이 지역의 목소리에 귀닫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 땅엔 몇 년에 한 번씩은 대놓고 울 수 있는 마당이 펼쳐진다. 유권자인 우리는 어떻게 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더 처절하게 울어야 한다. nur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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