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재난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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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

12일에 경주에서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뒷북 행정' '탁상 행정' '졸속 행정' '전시 행정' '엇박자 행정' 등의 표현이 확산된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및 태풍 매미,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09년 신종플루, 2010년 구제역 확산,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5년 메르스 사태 등 중앙정부 주도로 대규모 재난을 관리했던 학습적 근거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늘 '재난관리에 실패했다'는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 중앙이 아닌 지역 주도로 재난관리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안전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하 재난기본법) 제4조에 제시된 안전관리 계획이 현장의 적합성을 따져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장을 중심으로 관련된 소관 업무와 관련된 책무를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비전은 우리가 보고 싶은 또는 함께 만들고 싶은 안전한 사회(또는 세상)로의 지향을 선언하는 것이다. 안전한 세상은 풍요롭고, 편리하고, 쾌적하고, 그리고 여유 있는 세상을 지향하는 경제적 논리에 더 이상 밀리지 않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충남도가 최근 '충남 안전 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 지역 주도의 최초의 사례로 주목된다.

잇따른 대형 재난에 한계 드러낸
중앙정부 중심 재난관리 체계
지역 주도로 패러다임 바꿔야

지자체 '안전 비전' 선언할 때
초기 대응 시스템 개편도 필요
취약성 관리에 적극성 보여야


둘째, 지방자치단체가 초기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 지휘를 선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재난기본법의 대규모 재난과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조항에는 중앙 중심의 대응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방자치단체가 최초로 발생한 사건·사고에서 대규모 재난 또는 특별재난의 징후를 발견해도 중앙의 상황 판단이 늦어지거나 대응이 늦어지게 된다면 지자체의 초기 대응 업무가 마비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피해가 확대될 우려도 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도착하는 시간 지연으로 인해,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에는 사고 수습 책임을 지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정보 공유가 지연되면서 현장을 담당해야 할 지자체에 업무 공백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재난이 발생하거나 재난 징후가 있다면 중앙에 정보 요구를 하면서 기다리면 안 된다. 부산시 주도로 빅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전문가의 판단을 통해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이러한 근거 자료를 통해 중앙에 지체 없이 대규모 재난 또는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을 건의해야 한다. 또한 통신회사에 협조를 구해 행정 구역 내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도 즉시 발송해야 한다. 부산이 구축 중인 '스마트 빅 보드'를 통해 지역 중심의 초기 대응 체계를 제시할 때이다.

셋째,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취약성 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된다. 인력·장비·조직·예산의 부족 등으로 재난관리를 지방자치단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즉 외생변수로 생각하거나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없는 구조변수라고 치부해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령 2015년에 국민안전처가 공개한 '지역안전지수'에서 부산시는 화재 4등급, 교통사고 3등급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산 중구는 같은 유형의 자치단체 중에서 안전 수준이 가장 낮은 것으로 제시됐다. 일각에서는 지역안전지수 자체가 자연재해, 범죄, 안전사고, 자살, 감염병, 화재, 교통 등의 분야에서 사망자 수를 중심으로 반영되어 있기에, 지자체가 관리할 수 없는 영역까지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자체 중심으로 확인된 취약성과 잠재된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교육·훈련·학습 등 정성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 자체적으로 재난 취약 지도를 작성·공유하고 성능 개선과 보강이 수시로 이루어져야 한다.

재난을 어쩌다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으로 간주하고, 정부와 미디어에 의해 거대한 주목을 받았기에 '누군가가 무언가를 했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재난 피해에 대한 개별 학습은 정책 입안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단체, 정부, 지도자, 뉴스 미디어, 그리고 시민들이 다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경주 지진 발생으로 인한 정책 실패를 바라보면서 재난관리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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