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체 게바라식 항전' 막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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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26일(이하 현지 시간)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평화협정을 공식 조인하는 가운데, 25일 콜롬비아 남부의 한 도시에서 FARC의 한 조직원이 동료의 조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964년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52년간 정부에 항거해온 콜롬비아 최대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정부와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에 합의, 무기를 내려놓음으로써 쿠바 공산 혁명에 자극받은 중남미의 체 게바라식 게릴라 항전이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FARC가 사용했던 소총과 파편이 가득 찬 가스통, 가내 제작 지뢰와 박격포탄 등은 녹여져 평화 기념 조형물로 재탄생해 뉴욕과 쿠바, 콜롬비아 등지에 설치, 전시된다.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 지속했던 무력 분쟁의 핵심 도구들이 평화의 상징으로 극적 반전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콜롬비아 최대 반군 FARC
정부와 역사적인 평화협정
반세기 무력 분쟁에 마침표
페루 등지 소수 반군만 남아

보고타에 있는 국립역사추모연구소의 곤살로 산체스 소장은 "냉전 상황에서 시작됐던 위대한 게릴라 운동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뤄진 합의"라고 평가하면서 "다른 사건들이 있을 수 있으나 전략적인 면에서 무장투쟁과 무장 유토피아는 FARC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콜롬비아의 민족해방군(ELN)과 페루 및 파라과이 등지에 아직 소수 반군이 남아있으나 공산 반군에 의한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결론이다.

FARC은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다른 좌익 반군들과 마찬가지로 쿠바 공산 혁명을 이룬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로부터 '영감'을 받아 출범했다.

1956년 단지 80명의 추종자와 함께 어선을 타고 쿠바로 떠난 이들은 3년 후 쿠바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우익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으며 이러한 성공은 이어진 냉전 상황과 군사쿠데타, 미국의 우익 독재정권 지지 등으로 중남미에 좌익 반군에 의한 혁명 선풍을 조성하는 계기가 됐다.

1960~70년대에 걸쳐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중남미 거의 모든 지역에서 게릴라 반군들이 우후죽순처럼 태동했으며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FSLN)과 브라질의 10월 8일 혁명군, 베네수엘라의 민족해방 무장운동(FALN), 아르헨티나의 인민혁명군(ERP)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암살과 납치, 은행강도와 군사, 정치적 목표 공격 등을 수행해 우익 정권과 맞섰으며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 니카라과에서는 대규모 유혈 내전으로 비화했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은 1979년 혁명에 성공해 쿠바에서 훈련을 받은 게릴라 출신의 다니엘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의 주역이었던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된 후 쿠바와 소련이 혁명 수출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중남미의 혁명 열기는 주춤거렸다. 이들 지원국이 무기 공급을 감축하면서 무력에 의한 반군의 혁명 성공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1980년대 상당수 중남미국이 민주화하면서 반군들도 투표함으로 돌아섰다. 일부는 정부 고위직으로 진출했다. 비밀 공산 조직원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기도 했던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는 대통령에 선출됐다.

중남미에서 반군들의 활동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한 곳은 페루와 파라과이, 콜롬비아로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국제적인 마약 생산과 밀수의 거점들이다. 중남미 게릴라 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FARC는 냉전을 견뎌냈으나 전임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군 주도의 공격을 받아 대원들 수가 대폭 줄면서 밀림과 산악지대로 숨어드는 등 세력이 크게 약화했다.

약화된 FARC는 2012년 평화협상에 동의했으며, 당시 남미에 좌파정권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평화적 정치를 통해 집권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협상 참여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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