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성이다] 신문 스크랩하는 30대 한의사 김영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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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가위질 소리 따듯한 손길로 가을을 칠하다

그의 책상에는 가위, 풀, 각종 색깔의 펜, 색연필이 놓여 있다. 한쪽에는 신문 더미와 스크랩 노트도 쌓여 있다. 스크랩이 일상인 사람, 스크랩 광인 그의 나이는 '겨우' 36세다. 어찌 보면 신세대인 김영호 한의사는 신문 스크랩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그가 2005년에 스크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학 관련 정보에서 시작해 지금은 경제, 국제, 시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스크랩을 하고 있다. 구독하는 신문도 5가지나 된다. 10여 년 동안 스크랩한 노트는 20여 권이나 된다.

2005년 시작, 스크랩 노트 20권
예쁜 색칠에 감상 글귀도 넣어
디지털에 밀린 좋은 습관 되살려


'이곳의 글귀를 늘 참조하여 언행에 실수가 적도록 더욱 겸손하고 인애롭도록 최선을 다하자. 긍정의 힘과 정신력의 자양분이 될 것들. 준기(김 한의사의 아들)야, 여기 글들을 꼭 자세히 읽어 보고 살거라.' '인생 교훈(부제: 성공 조언)'이라는 제목이 붙은 스크랩 노트의 첫 장에 나온 글이다.

그는 이렇게 20여 권의 스크랩 노트에 각각 제목을 달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크랩한 기사에는 색연필로 밑줄을 예쁘게 긋고, 자신만의 감성이 담긴 글도 적었다. 신문을 읽고, 스크랩하면서 정성을 쏟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남짓. 그 일상을 10년 넘게 했다.

스크랩한 노트를 보면 그 시절에 있었던 감성을 느낄 수 있단다. 정보 이외의 것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을 느끼며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

"기사를 읽고 마음에 들면 밑줄을 긋고, 가위로 잘라 스크랩 노트에 풀로 붙여요. 그리고 옆 귀퉁이에 떠오르는 글을 쓰죠. 물론 시간은 많이 걸려요.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프린트하면 끝나겠지만. 쉽고 빠르게 속성으로 하는 것에는 정성이 안 들어갑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할 때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요."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생텍쥐페리의 고전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공을 들이고, 정성을 기울였을 때 그 가치가 더 커진다는 것. 김 원장이 말하는 아날로그는 '정성'이다. 모든 것에 정성을 기울일 때, 사람을 대할 때도 정성을 기울일 때, 관계의 확장성이 생긴단다.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성의 회복이다. 한의원 이름이 그래서 '공감 한의원'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일정을 꼼꼼히 적고, 특별한 사람에게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대신 편지와 엽서를 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는 '신문물'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싸이월드도 왕성하게 했고, 지금은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도 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보다는 아날로그 문화에 더 애정을 갖고 있을 뿐이다.

또 그의 스크랩은 자식 사랑으로 이어진다. 두 아들을 둔 그는 "아이들이 아빠 나이가 됐을 때 '과연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라고 궁금해할 것 같아요. 아빠의 감성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스크랩 노트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 원장은 마지막으로 아날로그의 재창조를 당부했다. "아날로그란 것이 너무 구식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실 스크랩, 손편지 등 과거의 좋은 습관이 제대로 평가도 받지 못한 채 디지털 문화에 의해 갑자기 사라졌죠. 다시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전의 좋은 것들을 재창조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래야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창조적 아날로거'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글·사진=최세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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