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문화재해설사 김신자·문공자 씨 "내 고장 역사 알리며 삶의 활력 되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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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청의 유래와 건축양식을 설명하는 김신자(왼쪽)·문공자 씨는 "관람객을 상대로 해설하다 보면, 없는 힘이 다시 생길 정도로 신바람이 난다"고 말했다. 김병집 기자 bjk@

"내 고장 역사를 알리는 재미에 빠져 삽니다."

조선 시대 동래 향청이 있던 자리에 우뚝 선 장관청에서 만난 김신자(75) 문공자(70) 씨. 이들은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과 함께 왜군의 1차 공격 목표가 되었고 동래 부사 송상현이 전사한 동래읍성을 중심으로 양산군과 기장현 군병을 통합 지휘하는 군사본부였던 장관청이 생겨난 배경과 역할에 관해 설명했다. 2인 1조로 장관청에 배치돼 2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두 사람은 친자매 이상으로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김 씨
피아노 강사로 오래 활동한 문 씨
문화재 해설사 자격증 취득
2인 1조로 '동래 장관청'에 배치

주 2~3회 일하고 월 20만 원
"보수보다 중요한 게 보람과 행복"


두 사람 중 연장자인 김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46년간 근무하다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했지만 내 고장 역사와 문화 유적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한 자신이 안타까워 동래문화재해설사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노하우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고 털어놓았다. 교직을 떠난 후 3년간 방과 후 교사로 활동한 것을 끝으로 남편 병시중을 드느라 사회와 단절됐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생각에 찾아낸 일이 동래문화재해설사라고 했다.

처음 3개월간 동래구 평생학습관에서 스토리텔링 교육을 받을 때는 신기함의 연속이었단다. 충렬사, 동래읍성, 동래부 동헌, 복천동 고분군 등 주변에 널린 유적을 무심코 지나쳐온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문화재 해설사 자격시험을 거쳐서 장관청에 배치된 김 씨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문화재 해설에 빠져 산다"고 말했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된 장관청은 병자호란 직후인 1669년(현종 10년)에 건립됐습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요충지에 위치한 만큼 군사적으로 비중이 높았던 시설이었습니다. 이후 중건을 거듭한 끝에 1815년(순조 15년)에 현재 위치에 정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겹처마와 팔작지붕 아래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는 본채와 홑처마에 맞배지붕 아래 정면 8칸 측면 1칸의 민도리형 1층 기와집으로 남아 있는 장관청은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열띤 목소리로 장관청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던 김 씨는 문화재도 반겨주고 안내하는 사람이 있어야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초·중·고 학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설명을 듣는 모습을 볼 때는 가슴이 충만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김 씨와 함께 일하는 문 씨는 종교음악과를 졸업한 후 61세까지 대입 음악학원에서 피아노 연주를 지도하는 강사로 일했다. 마지막 5년간 개인 출장 레슨을 한 경력까지 포함해서 36년간 고교생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일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문 씨는 동래구 평생학습관에서 교육을 받고 처음 문화재해설사로 나서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충청도에서 단체로 찾아온 사학과 대학생들 앞에서 장관청에 대해 설명을 하는 자신이 너무나 대견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매주 화·수·금요일(둘째 넷째 주는 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문화재해설사로 일한다는 두 사람이 받는 월급은 20만 원이다. 차비와 점심값을 충당하기에도 빠듯한 보수지만 더없이 소중한 돈이라고 했다.

"내 고장 역사를 아는 것이 나라 사랑의 시작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보너스로 월급까지 받으니 더없이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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