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온 덕후] 외곬수 아닌 전문가 대우 '뿌듯'… 덕질은 행복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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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주 씨가 소장하고 있는 희귀 인디 레슬링 DVD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강 씨는 인디 레슬링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레슬링 업계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건 쉽지만 생각보다 많은 열정과 시간, 노력이 든다. 순수하게 덕질이 즐거워서 계속한다는 덕후와 덕질을 넘어 이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덕후, 2명의 색깔이 다른 덕후를 만났다. 개성은 확연하게 달랐지만 한 가지는 똑같았다. 하면 행복하기 때문에 계속 덕후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다.

인디 레슬링에 빠진 강병주 씨

프로 레슬링도 격투기에 밀리고 있는 판에 프로도 아닌 인디 레슬링에 빠진 사람이 있다. 대학생 강병주(25) 씨다. 강 씨는 인디 레슬링을 좋아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약한 덕분에 미국 프로 레슬링 'WWE'의 국내 방송 해설진 제안을 받기도 했다.

강병주 씨가 소장하고 있는 희귀 인디 레슬링 DVD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강 씨는 인디 레슬링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레슬링 업계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 씨는 "어릴 때 심장 수술을 받아서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운동을 못 하게 하셨고 대신 TV에서 중계해주는 프로 레슬링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했던 게 시작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어릴 때 TV 중계 레슬링 보면서 인연
인터넷 활동에 'WWE' 해설 제안 받아

DVD 100장 수집·관전 리포트 올려
무대 연출 등 레슬링계 일하는 게 꿈


시작은 프로 레슬링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빠진 건 인디 레슬링이었다. 프로가 엔터테인먼트에 치중한다면 인디는 레슬링 자체에 집중하는 부분이 매력이다. 예를 들어 프로 무대에선 선수들이 등장해서 서로를 자극하는 말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쇼의 큰 부분이다. 인디에선 선수 등장 컷도 잘라낼 정도로 기술과 대결 그 자체를 더 중시한다.

"레슬링은 격투기처럼 진짜 싸우는 게 아닌 쇼예요. 쇼 안에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이 있어 자연스레 감동이 배어나오는 재미가 있죠."

강 씨는 인디 레슬링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선수가 프로에 진출해서 챔피언이 됐을 때 정말 짜릿했다고 한다. "다니엘 브라이언 선수가 브라이언 다니엘슨이라는 본명으로 인디 무대에 설 때부터 팬이었어요. 그 선수가 WWE에 진출해서 '베스트 인 더 월드'라고 불리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니 제가 다 뿌듯하더라니까요."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으로 인디 레슬링 DVD를 사서 보는 게 낙이 됐다. 그렇게 모은 게 100장 정도 된다. 지금은 인디 레슬링 단체가 경기를 온라인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서 정기 결제를 해서 본다.

레슬링 덕후 사이에 유명한 팬 사이트에서 1주일에 한 번씩 해외 인디 레슬링 관전 리포트를 쓰는 것도 강 씨의 덕질 목록 중 하나다. 지난해엔 다큐멘터리 아카데미 수강을 계기로 레슬링 팬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담은 다큐를 찍기도 했다. 내용을 더 보강해서 올해 부산독립영화제에 출품할 계획도 세웠다.

그는 인디 레슬링이 정말 좋아서 직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직접 영국이나 미국에 건너가서 프로 레슬링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싶어요. 무대 연출이나 각본 쓰는 법을 배워 레슬링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에요. 꿈을 이루더라도 지금처럼 진정성 있는 덕질은 계속할 겁니다."

용자물 애니메이션에 빠진 박성원 씨

어쩌면 한국에서 덕후의 양대 산맥은 애니메이션 덕후와 아이돌 덕후가 아닐까.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 덕후는 덕후의 시작이라고 불릴 만큼 두터운 '덕후층'을 자랑한다. 대학생 박성원(23) 씨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용자물'을 좋아하는 '용자물 덕후'이다.
박성원 씨가 '용자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프라모델을 들고 '덕질'의 즐거움을 말했다. 그는 '성덕'보다는 행복한 덕후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용자물'은 일본에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로봇이 외계 침략에 대해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인 '용자 엑스카이저'에서 말을 따 통칭 '용자물' 혹은 '용자 시리즈'라고 불린다.

로봇 침략에 지구 보호 애니메이션
인터넷 용자카페 회원만 8000명

인정해 주는 사람들 많아 마음 '훈훈'
3D 프린터로 프라모델 만들고 싶어


박 씨는 "대상층이 아무래도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 사이의 저연령층이다 보니 유치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어요. 하지만 인터넷 용자카페 회원이 8000명에 달할 정도로 시리즈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덕후층이 탄탄한 편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내용에 꿈과 희망이 있는 점, 때로는 감동까지 담고 있는 점이 '용자물'의 매력이라고 했다. '파워레인저'처럼 인간이 로봇으로 변신해 싸우는 집단 체제의 '전대물'보다는 덜 대중적이고 시리즈가 끝난 지 꽤 됐지만, 여전히 일본과 한국에서 덕후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도 '용자물' 피겨나 프라모델이 발매되고, 발매 되면 완판이 되는 등 여전한 인기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용자물' 시리즈의 초합금 피겨가 발매되기도 했다.

박 씨는 진정한 덕후(?)답게 세상엔 정말 뛰어난 덕후가 많은 것 같다며 자신을 덕후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고 했다. 모든 시리즈의 피겨를 다 모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프라모델 완구를 개조하거나 시리즈에 등장하는 로봇의 마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계산을 해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용자물'을 즐기는 덕후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오타쿠를 욕처럼 안 좋은 의미로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좋아하는 분을 덕후라고 부르며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느껴져요. 김희철 같은 연예인도 애니메이션 덕후라고 인정할 정도로 덕후가 대중화되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인디 레슬링 덕후 강 씨와 달리 박 씨는 '성덕'이 될 욕심은 없다. 그저 지금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찾으며 덕질을 계속할 수 있으면 된다고. "다만 덕후의 성지라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나 이케부쿠로에 가보고 싶어요. 3D 프린터가 대중화되면 직접 프라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정도, 딱 그 정도만 돼도 행복한 덕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사진=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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