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대 열린다] 긴장 속 분주한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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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만남도 당분간 사절… 공직자들 "단속 1호 피하자"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시행(28일)을 앞두고 공직사회는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일부 공직자는 수개월 동안 직무와 관련해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아예 단속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경남도 10월부터 청렴식권 발행
부울경 공무원 "첫 희생자 안 돼"
직무 관련자와 '관계 단절' 만연
기업 일각선 편법 매뉴얼도 확산

■'청렴식권'까지 등장

경남도는 다음 달 1일부터 청렴식권제를 시행한다. 청렴식권은 한 장에 3400원짜리다. 600장을 발급해 공사나 용역 관리감독자, 보조금 지원 등 직무관련자들에게 이 식권을 무상으로 점심시간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공직자가 직무관련자와 외부에 나가 식사를 할 경우 부정한 청탁과 금품을 수수할 수 있는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관공서에서는 일단 '소나기를 피하자'며 다양한 청렴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 관공서는 청탁방지담당관제를 운영하고, 직원 교육을 잇따라 실시하고 있다. 청탁방지담당관은 김영란법의 교육 상담, 위반 행위 신고 등 관련 모든 사안을 총괄한다.

경남도청의 한 직원은 "밥값과 선물, 경조사비는 크게 문제될 게 없겠지만 부정청탁의 경우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여 만일을 대비해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나지도, 전화하지도 말자"

정부 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법 시행준비단이 오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사업을 하는 김 모(47) 씨는 평소 자주 만나 업무 얘기를 나누던 고위 공무원들에게서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얘기를 들었다. 이 공무원은 앞으로 당분간 김 씨뿐만 아니라 직무와 관련된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며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심지어 기록이 남는 휴대전화 대신 직장 전화로 통화해 달라는 부탁도 들었다. 법 시행 초기에 시범 케이스로 단속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김 씨는 "만나는 공무원들마다 초기 혼란스러운 시기에 단속될 경우 '패가망신'한다며 무조건 조심하자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법 시행을 앞두고 공직 사회에서는 첫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복지부동'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당분간 경찰서를 오가는 등 곤욕을 치를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한 달 전부터 권익위, 감사원, '란파라치(김영란법 해당자를 집중 감시해 수익을 챙기는 민간인)' 등이 위반 행위를 점검하고 경찰도 위법 행위를 감시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공직사회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혹시나 경찰 조사에서 휴대전화 통화 내역이 드러나면 해당자는 죄가 있든 없든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를 드나들 우려가 높다"며 "아예 만나지도, 전화하지도 말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편법도 슬며시 고개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 속에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도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대관(對官) 업무자 사이에서는 이미 '김영란법 편법 매뉴얼'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관 업무자들은 정부, 관공서, 국회 등을 대상으로 비공식 로비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이들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 로비 업무를 해야 해 김영란법의 편법이나 사각지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주요 편법으로는 직원 수 및 영수증 조작, 현금 지급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접대비 결제 수단이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활성화되면서 지하경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에서 근무했던 한 전문가는 "김영란법이 생겨도 로비는 필요해 대기업과 로펌은 김영란법 관련 사각지대에 대한 분석, 법적 대응 등 다양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남경·김태권·김 형 기자 moon@busan.com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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