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39. 부산 남구 오륙도~민락수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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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바닷길, 잊지 못할 낭만에 젖다

제39차 S&T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참가자들이 오륙도의 배웅을 받으며 해맞이광장으로 오르고 있다. 동해안 해파랑길의 시작점이기도 한 이곳은 빼어난 바다 풍광을 자랑한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먼 곳에 있는 태풍 영향이었다. 비는 오지 않는다는 예보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른 아침 부산 남구 용호동 오륙도 선착장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 가늘게 시작한 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졌다.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행사 때마다 늘 도와주던 하늘이었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었다. 위기는 정면돌파. 빗속을 걸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온몸을 적시던 비가 마침내 그쳤다. 민락수변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젖은 몸도 말랐다. 언제 그랬느냐 싶게 하늘은 맑게 갰다.

■첫걸음처럼 시작하다

해파랑길이 예서 시작된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광장이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걷는다는 뜻.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다. S&T 해안누리 국토대장정은 이미 해파랑길의 많은 구간을 다녀왔다. 39차 국토대장정을 해파랑길 시작점에서 걷게 된 것은 우연치고는 의미가 깊다. S&T 창업 37주년 기념식도 함께 했다. 비가 오기에 최평규 회장의 기념사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드넓은 이기대 해변광장 서니
거짓말처럼 장대비 멈춰
섶자리 가는 길 곳곳 구름다리
바다 보며 걷는 재미 쏠쏠
민락수변공원 다다르자
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비를 맞고 기다리는 참가자를 위한 배려였다. 소통은 어쩌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가 보다. 깃발을 선두로 해맞이광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륙도가 일렬로 서서 처음처럼 시작하는 국토대장정 대열을 배웅해 주었다. 짧은 기념식이 열리는 동안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걸음을 되돌리려 하지는 않았다. 내리는 비를 마냥 맞고 있던 S&T모티브 이병완 전무는 "비가 오면 젖고 바람이 불면 옷이 마르겠지"라며 초탈한 표정을 지어 주변 사람을 달랬다.

준비한 우산을 꺼내거나, 비옷을 입었다. 30분쯤 걸었을까. 줄곧 오르막길에다가 비가 와서 걸음이 다들 빠르다 보니 한 여성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주변 동료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옥아, 힘드나 쉬어라." "힘내라!" "지름길로 가도 돼." 듣자 하니 그들은 전·현 부서 동료였다. 직장 동료가 장대비 속에서 격려의 말 한마디씩을 보태니 수옥 씨가 다시 힘을 냈다. 위기가 닥쳤을 때 함께 마음 쓰고 도와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든든한 배경이다.

길이 좁았다. 바다에 가까이 붙은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비가 오니 수로로 변했다. 비탈길에서는 미끄럼에 조심해야 했다. 온몸이 땀과 비로 젖어들었다. 길이 험해서 주최 측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참가자에겐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구름다리가 멋진 이기대 해안산책로.
■장대비를 뚫고 이기대

숲 터널을 지나니 조망이 확 트이는 곳이 나왔다. 농바위 전망대다. 농바위는 장롱바위로 제주도 출신 해녀들이 이곳에서 물질하면서 이정표로 삼기 위해 붙여 놓은 이름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바위가 서랍이 있는 장롱처럼 생겼다.

군데군데 덱 길도 있고, 바다 조망이 좋아 걷기가 한결 쉽다. 빗줄기도 살짝 약해지니 여유가 조금 생긴다.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는 잠시 쉬며 경치도 구경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속옷까지 홀딱 젖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싫은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강철은 뜨거운 불 속을 견뎌낸 뒤에야 더 단단해진다는 말이 실감 났다. 느닷없이 찾아온 장대비는 모두의 결속력을 다지는 담금질이었다.

드넓은 이기대 해변광장에 도착했다.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그쳤다.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마침 그 자리엔 매점이 있었는데 주인은 이 장면이 곱지 않았던 모양이다. 느닷없이 빗속을 뚫고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는데 기대했던 수익이 나오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마침 지원팀 김영조 과장이 가게에 왔다. 매점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다 사 주었다. 찌푸렸던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음식을 나누며 쉬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멀리 마린시티와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힘차게 파이팅을 했다.
용호만매립부두에 있는 빨간 등대.
바람도 살랑살랑 불기 시작했다. 해변광장에서 섶자리로 가는 길은 곳곳에 덱과 구름다리가 놓여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발도행(발견이의 도보 여행)'이라는 도보여행 모임의 부산 운영자인 S&T모티브 고기홍 씨가 한번 뒤를 돌아보라고 했다. 연이은 구름다리와 덱 길이 환상이었다. 광안대교와 마린시티가 펼쳐지는 부산 최고의 바다 풍경을 만끽하며 용호만매립부두에 도착했다. 작은 빨간 등대 하나가 환영해 주었다.

■콧노래 부르며 광안리

사실은 지금 걷고 있는 곳이 바다였단다. 2005년부터 4년간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었다. 이른바 용호만 공유수면 매립사업이다. 바다는 줄었고, 그 자리에 마천루가 들어서고 있다. 매립지의 가장자리로 해안누리가 나 있다. 어느덧 광안대교 아래를 지나 광안리해수욕장에 한발 다가선다.
광안대교가 잘 보이는 이기대 해안누리.
삼익비치아파트 해안로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참가자가 여기서 기다렸다가 속속 합류했다. 비록 구간의 절반만 걸을 수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걷기 위해 오전 내내 기다린 마음을 헤아려 본다.

화려한 광안리해수욕장을 지나 민락활어센터 앞을 지난다. 회타운 2층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내밀고 진귀한 구경이라도 난 양 관심을 보인다. 나중에 놀러 오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민락수변공원에 앉았다. 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S&T 창업 37주년을 맞아 S&T대상을 받은 3명도 함께했다. S&T모티브 김형철 전무, S&T중공업 장성호 이사, S&TC 장동준 부장이 영예의 주인공이다.

전 구간을 사원들과 걸은 '막걸리파' 최평규 회장이 잔을 들었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렸다. 회사 생일을 자축하며 S&T모티브 파트장 모임에서 준비한 떡케이크를 고루 나눠 먹었다. 특식은 미역국이었다.
멋진 조형물이 있는 광안리해수욕장 입구.
"올여름은 참으로 모질게 뜨거웠다"고 운을 뗀 최 회장은 "위기가 전방위로 오고 있지만 위기는 우리에게 또 한 번 도약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렇게 비가 퍼붓던 하늘이 닫히더니 급기야 반짝 해가 났다. 야외라 비 올 때까지만 먹자고 했는데 그날 점심 자리가 또 길어졌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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