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부산국제영화제 - 김동호·강수연 인터뷰] "신뢰 금 가면 20년 BIFF 위상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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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이사장(왼쪽), 강수연 위원장.

글 쓰는 사람은 글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이나 집행위원장이라면 축제 성공 여부로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첫 민간인 이사장 체제 도입, 이용관 전 위원장 해촉과 영화 단체 절반 보이콧 유지, 길게 잡아 4개월에 불과했던 집중 준비 기간.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위원장 앞에는 장애물이 여럿이다. 이사장과 위원장이 역할을 분담해 분초 단위 일정을 소화하느라 인터뷰는 각각 이뤄졌다. 대화에서 무거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지만, 반드시 올해 BIFF를 성공시키겠다는 굳은 다짐은 한결같았다.

김동호 이사장

"중국과 일본 강력 도전 중
BIFF 중단하면 회복 불능"

"영화제 도움 주는 기관서
이사회 참여는 옳다고 생각"

강수연 위원장

"올 영화제 개최 영화인 덕분
보이콧 고수 목소리도 경청"

"아시아 신인 감독 다수 발굴
BIFF의 복이자 한국 역량"

■"영화제 안 열면 존속 장담 못해"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올해 영화제를 왜 꼭 열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부산시와의 갈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영화제 중단은 영화계에서나 부산시 일각에서나 공통적으로 제기된 사안이었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영화제는 희생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칸영화제 같은 세계적 영화제나 국내에선 부천 전주 사례가 근거로 인용됐다.

김 이사장의 답은 이렇다. "칸영화제는 1946년 시작해 1948년, 1950년 두 차례 중단됐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경쟁이 될 만한 영화제가 베니스영화제(1934년 시작)밖에 없었기에 중단돼도 지장이 없었다. 반면 BIFF는 20년간 쌓은 세계적 위상이 있고,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서 강력하게 BIFF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1~2년 못 한다면 결정적으로 회복 불능 사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강 위원장은 유럽과 아시아의 차이를 강조했다. "올해 BIFF가 열리지 않는다면 정부 차원의 엄청난 지원과 자본력을 무기로 하는 중국과 일본 영화제에 권위와 시장을 모두 빼앗길 수밖에 없다. 아시아는 지역적 연대가 강한 유럽과 차이가 있다. 문화행사는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인데 BIFF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올해 무너지고 내년 영화제를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영화제가 누굴 위해 망가져야 하나?"

■"새 정관은 표현의 자유 보장"

부산시와 BIFF가 오랜 협상 끝에 타결한 ㈔BIFF의 정관은 조직위 체제에서 민간 사단법인의 이사회 체제로 바뀌었다. 프로그램 선정에 내·외부 간섭을 차단한 것은 성과지만, 영화계 일각에선 이사회 구성에서 부산시 추천 인사가 절반을 차지하는 점에서 독립성이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반박한다. "부산에서 열리고 시 예산을 받는 이상, 적어도 절반 가까이는 영화제를 치르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할 기관·단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균형 있게 이사회를 운영해 나갈 생각이다. 바뀐 정관에 따른 첫 이사회 구성이라 부산시의 추천을 받았을 뿐 이사 추천은 이사장 권한이다. 이사장 의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이콧도 BIFF에 대한 애정"

강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발표에서부터 올해 초 이용관 위원장 해촉과 김동호 이사장 영입에 이르는 시기를 "도망칠 수 없는 구석에 내몰린 쥐 같았다"고 회상했다.

곡절 끝에 BIFF와 부산시가 합의한 정관 개정안을 놓고 보이콧 해제에 대한 찬반 투표를 벌인 결과 4개 단체(제작가협회, 독립영화협회, 시나리오작가조합, 마케팅사협회)는 찬성, 4개 단체(감독조합, PD조합, 촬영감독조합, 영화산업노조)는 반대, 여성영화인연대는 유보 입장으로 결론 났다.

강 위원장은 "이번에 영화제를 열 수 있게 되고, 정관 개정에 독립성과 자율성이 반영된 것은 영화인들이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준 덕분"이라며 "보이콧을 풀 수 없다는 영화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영화제 개최 자체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 BIFF를 만들고 15년 동안이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가 명예롭게 은퇴한 어르신을 이렇게 다급하게 부담스러운 자리에 모시는 일은 절대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신인 발굴 정체성 강화"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이 이런 고충을 털어놓으면서도 자신 있게 강조한 것은 올해 프로그램이었다. 아시아 신인 감독을 발굴해 세계무대에 선보인다는 BIFF의 정체성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아시아영화의창, 뉴커런츠, 이 두 부문에 초청된 67편 중 신인 데뷔작이 27편에 이른다. BIFF가 추구한 정체성이 프로그램에 그대로 녹아있다. 짧은 시간 내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프로그래머의 역량, BIFF에 대한 세계 영화계의 지지와 연대 덕분"이라고 말했다.

집행위 수장으로서 강 위원장의 의지는 더 확고했다. "영화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올해 초 협찬 유치가 단 돈 10원도 없을 때 모두 망가지고 포기하더라도, 아시아 신인 감독 발굴과 세계 소개, 아시아영화 지원 육성 교육 비전 등의 프로그램은 한 작품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아시아 신인 작가가 이렇게 많이 나오고, 한국영화 프로그래밍이 불과 40여 일 만에 성공적으로 완성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데 이는 BIFF의 복이기도 하고, 프로그래머와 한국영화의 역량"이라고 추켜세웠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사진=강원태·김병집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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