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이야기] 3. 거제 고현 '블루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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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갯바위… 자연을 담았다

잔잔하게 주위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건축에 대한 인식을 새로 불어넣는 거제시 고현동 건축물 KSA 블루나인 측면. 사진작가 이현미 제공

일본 도쿄 번화가 긴자 거리에 가면 독특한 상업 건축물이 경쟁하듯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건축주들은 상품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긴자에서는 꼭 쇼핑을 하거나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된다. 거리에 나란히 서 있는 건축물들의 안팎을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쏠쏠한 즐거움이다. 여기에 반해 우리나라 상업지구 건축물들은 개성적인 표현보다는 타인에 맞추기 위해 자기 행동을 바꾸는 '집단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설사 그럴싸한 건축물이 있다고 해도 판매 촉진을 위한 사이비 개성화로 외적인 차이를 둘 뿐이다.

젊음의 거리 내 9층 건물
좁은 폭·협소한 부지 활용
층간 변화 주고 개방성 강조

전면 유리 채광 열효율 제고
야간엔 다양한 조명 눈길


경남 거제시 고현동 젊음의 거리. 백일홍이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가지를 펼치듯, 기존 관행을 거절하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알리는 건축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KSA 블루나인 정면.
KSA 양덕복 대표가 설계한 9층 상업건축물인 블루나인. 블루나인은 거제도의 섬과 갯바위 풍경을 형상화시켰다. 폭이 좁고 긴 협소한 부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양 대표의 숨은 노고와 역량을 짐작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무엇보다도 40m에 이르는 1층 공간을 열린 공간의 필로티로 둠으로써 공적 공간으로 설정한 게 특징이다.

시각적으로도 툭 트인 공간 속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상업 건축물에 공공성을 최대한 고려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인다는 것은 임대인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전면 유리로 에너지 절약을 추구했고 야간에는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지는 조명의 유희도 볼 만하다.

양 대표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우주의 별과 행성의 공간을 연결하는 '자연'을 담기 위해 블루나인을 구성해 보았습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구성'이란 말을 썼다. 양 대표는 블루나인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거제 어느 해변에 있음직한 조약돌 하나가 부채꼴 모양으로 스스로를 확장하며 그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조약돌에 담긴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껍질을 벗겨내 건축으로 형상화시켰을 뿐이다.

양 대표는 "건축주 이익만 따라 공공성과 예술성을 낮춘다면 그 사람은 건축주의 하수인일 뿐 건축가가 아닐 것입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블루나인을 설계한 건축주가 되었다.

양 대표는 "더 많은 공간을 쪼개 임대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명감 같은 게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며 "더 많은 사람이 건축을 이해하고 또 다른 좋은 건축물을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블루나인 또한 사람의 이야기다. 9층으로 만들어진 층간의 변화는 창을 통해 자연과 도시를 탐하게 된다. 근대가 내세우는 '자연의 수학화'로 인해 살아있는 공간마저 추상화되고 있는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양 대표의 비정형화되며 상상력 넘치는 건축 언어들은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 대항하는 움직임으로 그 대상은 아름다워진다"라는 말이 있다.

블루나인은 그 대상의 결정체일지 모른다. 작은 '맞섬'들이 꽃 피우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와 공간은 더 나아지고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제 고현은 더 많은 사람과 시민들이 건축을 이해하고 더 좋은 건축물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박태성 선임기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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