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 해금강테마박물관 유천업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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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쭈바·청자 담배·쥐잡이… 추억 속으로 '타임슬립'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포스터들.

'북괴도발 못막으면 자유없는 노예된다' '분별없는 좌경용공 북한오판 자초한다'…. 1970년대 표어들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에 묘하게 '오버랩' 된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때 그 상황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262-5 해금강테마박물관(055-632-0670). 여기에 들어서면 20~40년 전 과거로의 '타임슬립'을 경험케 된다. 우리 살았던 옛 모습을 보여 주는 물건이 무려 5만여 점. 모두 한 개인의 노력으로 수집됐다. 유천업(62) 관장이다. 청춘을 바쳐 물건들을 모으고 박물관을 세워 지난 10년 동안 지켜 왔다.

생활소품·선거 포스터·표어…
청춘 바쳐 모은 '옛것' 5만 점

"박물관 만들기 참 힘들었지만
우리 삶 돌아보는 공간 되기를"
88올림픽 30주년 특집 준비 중

■추억을 느끼는 곳

옛 시장골목 느낌을 재현해 보는 유천업 관장.
내부 가득히 우리의 지나온 세월 속 물건들을 모아 두었다. 단순한 진열이 아니라 다방, 세탁소, 옛 교실 풍경, 구멍가게, 이발소, 만화방 등 영화 세트를 보듯 개별 주제를 가지고 추억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어 둘러보다 보면 실제 옛 거리를 걸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 쓰던 국수 뽑던 기계가 보인다. 저런 걸 언제 썼던가 싶다. 파리 잡는 유리병도 있다. 물을 담아 놓으면 파리가 저 혼자 들어가 익사한단다. 처음 보는 거다. 삼양라면이 처음 만들어져 나왔을 때 봉지도 있다. 지금 하나에 6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입으로 불던 살충제 용기. 광복 이후에 쓰던 미니 히터도 있다. 원래는 일본 사람들이 쓰는 물건인데, 이불 밑에 넣고 켜 놓으면 따뜻한 온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왔던 사이다 병, 얼음 고무 주머니를 넣는 아이스크림통…. 모두 현실에서 쓰던 물건이다. 실제 '진품명품'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물건도 있다.

오리지널 쭈쭈바 봉지. 귀한 거다. 시장에 내놓는다면 하나에 20만 원이 넘어간다. 1970년대 후반에 생산된 포도주병. 아직 내용물이 그대로 들어 있다. 마셔도 될까? 이브껌. 최소한 15년은 됐다.
국내에 시판돼 한 시대를 스쳐간 각종 담배들.
유 관장은 "전시를 하더라도 이렇게 콘셉트를 잡아 두는 게 중요하다. 구멍가게에 옛날 무엇을 팔았는지 실제 가게 모양을 갖춰 보여 주는 거!"라고 했다. 옛날에 흔히 먹던 과자의 나이를 적어 놓았다. 첫 생산된 연도를 표기해 놓은 것이다. 크라운 산도? 1961년생 소띠다. 뽀빠이는 72년생 쥐띠, 새우깡은 71년생 돼지띠, 웨하스는 75년생 토끼띠, 꿀꽈배기 72년생 쥐띠…, 그런 식이다. 이런 것들은 소소하지만 제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쥐잡이 모습 사진. 옛날에 쥐 잡는 현장을 찍은 거다.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 갔거든. 5월 15일 1년에 한 번씩 전국적으로 했어요. 파리도 잡았는데. 5마리 이상 성냥통에 넣어 갔지." 유 관장은 그리 회고했다.

1층 입구 복도 벽면에 영화 포스터들이 좍 붙어 있다. 유 관장이 가진 게 3000장이 넘는다고 한다. 한 번에 다 못 붙이고 교체해 가며 붙여 놓는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많은 영화가 있었나 놀라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포스터다. 우리나라 정치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전후 속칭 '삐라'도 볼 수 있다. 가만 보면 내용이 남한 것은 당시 북한이 남한에 살포했던 것과 유사하다. 선전선동은 북한이 잘했던 모양. 우리는 거기 형식을 받아 문구만 바꾼 게 많았다. 또 다른 벽면에 우리 사회 이슈의 변천사를 짐작할 수 있는 표어들이 전시돼 있다. 300여 장. 수장고에 3000여 장이 더 있단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들도 있다. 처음엔 외부에서의 압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왜 우리 고향에서 저런 잔인한 사진들을 보여 주느냐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자극적인 컬러 사진은 다 빼 버리고 흑백 사진만 전시했다. "끔찍하고 가슴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지난날의 기록"이라는 게 유 관장의 답변이었다.

■이제는 우리 것을 되돌아보며 살 때
1960~1970년대 관공서들의 대공 관련 표어들.
"잡식성이라 오만 가지 다 수집했어요. 현재 우리 박물관 같은 규모의 박물관을 20개 정도는 더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수집품을 갖고 있습니다. 5만 점이란 건 국가에 등록한 것만 친 거예요."

옛날 물건들 구입처는 다양하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골동품상들이 보내 주기도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이용한다. 외국 사이트를 뒤질 때도 많다. 국내에선 소장자들이 공개를 꺼리거나 내놓는다 해도 지나치게 비싼 값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옛 모습을 간직한 유물을 어찌 보면 외국에서 더 많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돈이 만만찮게 들었을 테다.

"처음 여기 거제에 왔을 때 돈을 좀 들고 왔어요. 그때 그 돈 같으면 이 일대 땅을 다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미쳤던 거죠. 박물관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 박물관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면 안 했을 겁니다."
정부의 가족계획 변천사를 알 수 있는 표어들.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와서 이런 일을 벌였는가? 유 관장이 늘 자주 듣는 질문이다. 젊어서 그는 모형물 제작회사를 운영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예를 들어 남대문의 100분의 1 크기 모형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이었다. 원래 고향이 부산이지만 경남 창원에서 회사를 운영했다. 거제와의 인연은 거제에 조선소가 많았던 때문. 삼성이나 대우 등 거대 조선업체들이 범선이나 LNG선 등의 모형을 제작해 달라는 주문을 해 왔던 것이다.

박물관 운영이 만만할 리 없다. 입장료만 가지고는 현상 유지도 힘들다. 그 때문에 문만 열어 놓고 있다가 얼마 못 가 폐관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그래도 유 관장은 박물관 운영이나 옛 유물 수집을 멈출 생각이 없다.

"꽤 돈이 많이 모였어요. 그 돈을 가지고 먹고살 궁리를 해야 하는데, 수집하는 데 정신이 팔려 3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너무 경제 쪽에만 치우쳐서야 되겠는가, 이제는 우리 것,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겠나, 그리 생각했던 거죠."

오는 2018년은 88서울올림픽 30주년. 이를 맞아 88올림픽 30주년 특집을 하고 싶다. 현재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 상황. 1000종 이상 모을 생각이다. 그의 욕심에 끝이 없어 보인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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