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 열전] 25.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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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에 폭발적 가창력… 'J에게' 단 한 곡으로 스타덤

우리 대중음악 걸 크러시의 원조 이선희는 노래를 운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32년 차 시대의 명가수다.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최근 자주 회자되는 단어 중에 '걸 크러시(Girl Crush)'라는 말이 있다. 소녀(Girl)와 '반하다'는 뜻의 크러시 온(Crush On)을 합성한 말로 여성이 동성에게 느끼는, 성적인 감정이 수반되지 않은 강한 호감이라고 정의한다. 이렇듯 걸 크러시의 매력에 빠져서일까. 최근 음원차트 상위권 및 장기 랭크 여가수만 무려 100여 명에 달한다. 우리 대중음악 걸 크러시의 원조는 이선희다.

■언니 부대 몰고 다닌 걸 크러시

불교 음악 범패 전수자 아버지를 둔 이선희는 어릴 때부터 가수의 재질을 보였다. 대학 1년 때 '4막5장'이라는 교내 음악 서클에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반대하던 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게 됐고 강변가요제에 출전하는 모험도 감행한다. 1984년 여름, MBC 강변가요제에 파마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소녀가 등장한다. 임성균과 함께 '4막5장'이라는 혼성 듀엣으로 참가한 그녀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상을 거머쥔다. 수상곡은 'J에게'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가요계는 출렁인다. 임성균의 입대로 솔로로 본격 활동에 나선 이선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강변가요제 대상 받고 솔로 활동
대규모 '언니 부대'로 시대 아이콘
골든 디스크 5연패 '진기록'

송시현 만나 4, 5집서 음악적 변화
홍콩 배우 장국영과 듀엣 콘서트
'그중에 그대를 만나' 감성 돋보여

당시 타 방송사에서 데뷔한 가수는 다른 방송사에 출연하지 못했던 관례를 깨고 'J에게'는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1984년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연말 KBS 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의 신인상 역시 이선희가 차지했다. 당시 가요계의 두터운 팬층인 여중고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남자가수 전성시대에 디바의 출현은 가요계는 물론, 여학교에도 신선한 바람이 됐다.

이선희는 수많은 여학생 팬을 대동하는 걸 크러시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조용필의 오빠 부대를 위협했던 언니 부대. 어린 여중고생들이 공연장에서 오빠 대신 언니를 외치게 만들었던 주인공. 이선희 회사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동원했다는 유언비어마저 떠돌 정도로 당시 언니 부대의 화력은 엄청났다.

■송시현과 함께 변곡점 맞아

'J에게' 단 한 곡으로 198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어버린 이선희의 정규 1집 '이선희 1집'(1985)은 이듬해인 1985년 초에 나왔다. 여기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이 연달이 히트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인기가 'J에게'의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입증했다. 그해가 가기 전에 다시 내놓은 2집 '이선희 Vol.2'(1985)에서는 '갈바람', '괜찮아',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등의 히트곡이 계속해서 나왔고 1986년 나온 3집 '이선희 3집'(1986)에서도 '알고 싶어요', '어둠은 걷히고', '영'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골든 디스크 5연패를 비롯해 국내에 있는 모든 부문의 상을 모조리 다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이후 '이선희 4집'(1988)은 이선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녀의 음악이 의미 있는 변곡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단초를 설명하는 이름은 송시현이다.

이선희의 음악 세계에서 의미 있는 변곡점이 된 앨범 '이선희 4집
1987년 '꿈결 같은 세상'의 히트로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 송시현은 이때부터 이선희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4집에서 A면 타이틀곡 '사랑이 지는 이 자리'와 B면 타이틀곡 '나 항상 그대를'을 포함해 모두 4곡이 그의 작품이다. 둘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송시현 특유의 감수성과 서정성은 이선희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졌고 이후에도 그는 한동안 이선희와 함께하게 된다. 이듬해 '이선희 5집'(1989)에서 이선희는 앨범 곳곳에 사회성 짙은 곡들을 배치했다. '오월의 햇살'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곡이었고, '한바탕 웃음으로' 역시 시대적 아픔이 배어있는 곡이었다. 여느 민중가요 못지않게 깊고 아련한 것이었다.

송시현은 5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앨범의 대표곡인 '한바탕 웃음으로'와 '겨울애상'이 그가 만든 곡이다. 같은 해 초콜릿 CF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홍콩의 고(故) 장국영(장궈룽)이 첫 내한한다. 장국영은 이선희와 'J에게'를 듀엣으로 열창하며, 듀엣 콘서트를 열었다.

그 인연으로 장국영은 훗날 이선희를 홍콩으로 초청하는 남다른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홍콩 BMG 레코드를 통해 'It's Original Songs'라는 앨범에 'J에게'를 수록 발표하고, 영어로 자신의 히트곡을 번안하여 부른 'Where The Love Falls..'(1989) 등의 앨범도 발표한다.

1990년 6집 '이선희 Ⅵ'(1990)에서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이 사랑을 받았고,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라는 자작시 낭송집과 캐나다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세종문화회관에서 협연 후 실황앨범 'Lee Sun Hee & Montreal Chamber Orchestra'(1990)을 발표한다. 7집 '추억 속을 걷네'(1991), 김영동의 국악적인 요소를 듬뿍 담은 8집 '李仙姬 八'(1992), '이선희애창동요'(1993), 9집 '이선희 9'(1994), 그리고 대부분의 곡을 스스로 작사/작곡한 앨범 10집 'First Love'(1996)를 꾸준히 선보이면서 이전과는 다른 성숙된 노래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온갖 악재 속 도전은 계속된다

인기 하락과 심한 부상 등 악재 속에서도 그녀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11집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12집 'E Sunhee my life + best'(2001)에서 자작곡 '이별 小曲'과 박진영의 '살아가다보면', 유영석의 '이 노래를 빌려서', 김종서의 '아마' 등 11곡의 신곡과 베스트 16곡을 담아 새로운 활동의 서막을 알렸다. 2005년 '사십 대에 맞이하는 봄'의 의미를 은연중에 담고 있는 13집 '四春期'(2005)는 이선희 자작곡인 '인연'을 비롯해 9곡의 신곡과 20주년 라이브 콘서트 실황 17곡을 담았다. 10집부터 시작된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가 완숙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진정한 걸작이란 평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 7집부터 시작된 어쩔 수 없는 대중적 반응의 퇴조에도 이선희는 견인주의적인 자세로 자신의 음악적 내용을 집요하게 발전시킨다. 2009년, 데뷔 25주년을 맞아 새로운 음악적 감성 10곡을 업그레이드 된 자작곡으로 채운 14집 '사랑아…'(2009)를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5년 후 정규 15집 앨범인 동시에 데뷔 3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 '세렌디피티 Serendipity'(2014)를 통해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그녀의 음악적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이번 앨범 역시 11곡 중 9곡이 자작곡이다. '그중에 그대를 만나' 등 더욱 원숙하고 깊이 있는 음악과 한없이 섬세하고 감성적인 보컬을 선보이며, 오직 이선희만이 낼 수 있는 감성을 담아내었다. 우연을 통해 운명을 만난다는 세렌디피티의 뜻처럼, 음악을 만나 노래를 운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32년 차 우리 시대의 명가수 이선희. 어떤 음악에서도 빛이 나는 그녀의 소리와 표현은 거부할 수 없는 반추의 미학이리라.

최성철·페이퍼 크리에이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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