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청년수당 논란의 비뚤어진 시각
취업 준비 청년들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고용노동부와의 갈등 끝에 결국 법정으로 가고 말았다. 배후에는 여러 내막이 뒤엉켜 있을 것이다. 금방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내막 가운데 하나는 아마 내년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으리라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의 행보가 노골적으로 그런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억측에 가까운 논리로 반대하다가 '구직수당'이라는 짝퉁을 급조하고는 결국 직권취소까지 내린 행보의 본질은 요컨대 청년수당을 주지 말라는 의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청년들의 입장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을까?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공감하는 상식이다. 자기소개서를 수십 장 써야 하고, 1·2·3차 면접에, 다시 인턴을 거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취업과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 그 자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서울시든 고용노동부든 약간의 도움이라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갈등의 현주소는 결국 고용노동부가 청년들의 소망을 걷어차 버린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 청년수당 정부 직권취소
청년수당 아예 주지 말라는 말
구조조정 기업엔 수십 조 지원
노동자 지원 90억도 거부한 정부
노동자-자본가는 경제 두 축
편향된 시각이 경제난 가중시켜
고용노동부는 왜 청년들의 소망을 걷어차 버린 것일까? 단지 정치적 계산뿐이었을까? 아니면 헬조선의 물정에 눈을 감고 청년들에게 비난만 퍼부은 대통령의 '명왕성' 의지를 따른 때문일까? 모두 조금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잘못된 시각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가 청년수당을 비난하면서 내세웠던 '도덕적 해이'가 단서를 알려준다. 이 단어는 경제학의 오랜 미신을 품고 있는데, 즉 "노동자들은 먹고 살 만하면 노동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근로의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경제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대통령이 경제단체장들을 만나 그들의 요구를 경청하면서도 노동자들의 대표를 만나 어려움을 듣는 경우는 없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 노동자는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암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미신인지 한번 확인해 보자.
경제는 두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노동력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수단(원료, 작업도구, 건물 등)이다. 이들 요소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데 전자가 노동자, 후자가 자본가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직원 없는 사장이 우스꽝스러운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들 요소는 혼자서는 경제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들은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서로 의존해 있다. 경제의 활력을 위해서는 당연히 두 요소 모두 활력을 얻어야만 한다. 한쪽만 활력이 넘치고 다른 한쪽이 활력을 잃으면 자전거에서 하나의 바퀴만 굴러가고 다른 바퀴가 정지해 있는 경우처럼 경제는 굴러가지 못하고 고꾸라지고 만다.
자본가들의 경제적 실패에 구조조정 명목으로 세금 수십조 원을 지원하면서 헬조선의 노동자들에게 고작 9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부가 우리 경제의 자전거를 어떻게 운전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지금의 경제난은 이처럼 균형을 잃은 경제인식 때문에 더욱 심화된 것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 모두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목표가 허사로 돌아간 것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사족 한마디. 지금 부산시장도 경제학 박사이다. 그런데 청년수당의 소란에서 부산은 아예 비켜나 있다. 우리 시장님의 경제학은 어떤 것인지도 이참에 정말 궁금해진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