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억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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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8월 29일은 일본에 주권을 뺏긴 경술국치일이다. 8월 22일 어전회의에서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탄조약의 전권위원으로 나섰다. 시종원 수장 윤덕영이, 순종의 황후 윤씨가 치마폭에 감춘 옥새를 빼앗아 위임장에 옥새를 찍었다. 이완용은 위임장을 들고 가 조선통감 데라우치와 함께 한일합병늑약에 서명했다. 매국 공작의 실무를 맡았던 이는 신소설 <혈의 누>를 썼던 이인직으로 이완용의 비서였다. 22일 서명된 늑약은 백성의 저항을 두려워 해 29일 순종의 조칙으로 공식 인정됐다.

한일합병늑약이 체결된 곳은 서울 남산 자락의 통감관저였다. 이후 총독관저, 1940년 통감과 총독을 기념하는 시정기념관(始政記念館)으로 바뀐 곳이다. 1936년에는 러일전쟁 전후 8년간 주한일본공사를 지낸 하야시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한국전쟁 이후 이곳의 흔적은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러던 곳에 '통감관저 터'란 표석이 세워진 것이 2010년이었다. 기억은 광대한 시간 앞에서 부스러기가 돼 가지만, 그래도 망각의 중력을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제 그 치욕의 터가 '기억의 터'라는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리는 대반전의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것이 망각을 이기고 치욕을 승화시키는 일이다. 공원은 임옥상 화백이 상징성을 담아 설계했다. 위안부 할머니 247명의 이름과 증언을 새긴 '통곡의 벽'을 비롯해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등으로 꾸며져 있다. '통곡의 벽'에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세상의 배꼽' 조형물에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문장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쓰여 있다.

'기억의 터'가 기억하라고 되풀이 말하고 있는 그 역사는 과연 무엇인가. 대부분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 일쑤다. 하지만 역사는 엄청난 것을 내장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라는 저 명제를 새겨 본다. '기억의 터'에 하야시 공사 동상의 표석이 남아 있다. 지난해 그것을 거꾸로 세우고 '거꾸로 세운 동상'이란 이름을 붙였다. 식민지의 하늘을 찔렀던 동상은 없어지고 그 표석이 남아 거꾸로 세워지는 이런 것이 기억과 역사의 힘일 것이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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