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효자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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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갑자기 찾아왔다. 며칠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져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선선한 날씨다. 35도를 오르내리던 한낮의 폭염과 견디기 힘든 열대야가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 같은 날씨 급변은 특이한 행보를 보인 제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대부분의 태풍은 해수면 온도 27도 이상인 북위 5∼20도 북태평양 서부 열대 해상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 19일 생긴 라이언록의 발생지는 그보다 한참 북쪽인 일본 남쪽 해상이다. 라이언록의 '이상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태풍처럼 북쪽으로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남서진하며 일본 오키나와 방면까지 내려왔다가 26일 진로를 유턴해 북동진, 29일 발생 지점 근처로 복귀했다. 30일에는 다시 방향을 북서쪽으로 틀어 일본 중북부 지방으로 상륙할 전망이다. 라이언록의 이 같은 움직임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제9호 태풍 민들레의 영향으로, 남쪽에서 발생해 북진한 민들레에 밀려났다가 민들레가 힘을 잃으면서 다시 북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찜통 더위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중국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정체됐던 한반도 주변 기압 배치가 흔들려 고온다습한 고기압이 약화되고 그 빈자리에 차가운 대륙 북쪽 고기압이 내려오면서 선선한 날씨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저기압인 태풍은 매년 30개 정도가 발생해 그 가운데 한두 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태풍 때문에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 원의 재산 피해를 입은 적도 적지 않다. 그러나 태풍이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태풍은 저위도 지방의 대기 중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해 지구 상 남북의 온도 균형을 유지시켜 주고 해수를 순환시켜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물 부족을 해소시키는 중요한 수자원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실제 올해 못지않게 더웠던 1994년 7월 하순 태풍 월트가 바람 피해 없이 많은 비를 내려 심각한 가뭄이 해갈되기도 했다. 올해 태풍은 우리나라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최악의 더위를 몰아내는 역할까지 했다. 모처럼의 '효자 태풍'이라 할 만하다. 유명준 논설위원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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