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귀촌일기] 9. 소쩍새는 소쩍, 왜가리는 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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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 그 나름대로 시끄럽다. 소쩍새는 정말 해가 질 때 시작해 해가 뜰 때까지 운다. 왜가리는 새벽에 그 큰 목청으로 외마디 비명을 "왝" 질러 잠을 깨워 버린다. 닭들은 알을 낳았으니 닭장 문 열라고 울고 뒷집 영감님 경운기는 탈탈탈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다. "갈치 사이소" "구멍난 방충망 고치소" 트럭 행상에 이장님 방송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소음이 소리에 그치는 건 탁 트인 넓은 공간 덕분일 것이다. 역으로 보면 도심 아파트의 소음 분쟁이 잦은 이유는 소리가 빠져 나갈 공간이 없고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다.

소음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면 시골 생활을 권하고 싶다. 층간 소음 분쟁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층간 분쟁은 원인이 무수히 많겠지만 그중에 소음으로 인한 분쟁은 유독 갈 데까지 간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다반사인 세상이다.

법기 촌집에 살다 4년 동안 부산으로 집을 옮긴 적이 있었다. 작곡을 지망하는 딸아이 대학입시를 위해서였다. 학교 주변 빌라였는데 하필 아래층에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었다.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피아노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요구하였다. 결국 인근 아파트로 옮겨야 했다.

그 시기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깨달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아래층에서 그만 뛰라고 항의가 들어왔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층간 소음 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잦으니 서로 조심합시다"라는 말이 따라 나왔다. '불미스러운'이라는 대목에 일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폭력사건의 잠재적인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아파트가 최상의 주거 형태인 요즈음 우리는 소음 앞에 주눅 든 새로운 인간형이 되어가고 있다.

외칠 장소도 외칠 일도 없는 건 인간뿐이다. 요즘은 산에 가서 "야호"도 외치지 못한다. 산짐승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나 뭐라나. 소쩍새는 소쩍, 왜가리는 왝 소리를 뱉어 내는데 사람만이 서로의 소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신세다. 억압할수록 소리에 대한 면역력은 더 떨어질 텐데 말이다.

법기에 이사 온 날 동네 어른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우는 소리 얼마 만이냐, 인제 우리 동네 좋은 일 생기려는갑다." 아이들은 뛰고 피아노를 쳐야 바로 자란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변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이 주변에 적응하는 방식을 택한다. 아파트를 끔찍이 사랑하기에. 도시민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소음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목소리 낮출 것, 발뒤꿈치 들고 걸을 것 등이 더는 강요되어선 안 된다. 논설위원 ye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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