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오로모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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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로마 올림픽 남자 마라톤 결승점, 한 흑인 선수가 맨발로 베네치아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티오피아 황제 근위병이었던 비킬라 아베베였다. 그는 맨발로 42.195㎞를 뛰어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베네치아 광장은 1935년 무솔리니 정권이 에티오피아 정복을 선언했던 장소였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는 4년 뒤,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제패했다. 아베베는 오로모 족 출신이었다.

에티오피아 오로모 족은 케냐의 칼렌진 족과 함께 세계 육상의 중·장거리와 마라톤을 석권하고 있는 종족이다. 마라톤 강국 케냐의 상위 육상 선수 대부분이 케냐 인구의 12%에 불과한 칼렌진 족에서 배출된다. 오로모 족 역시 에티오피아 중·장거리 육상 선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로모 족과 칼렌진 족은 어릴 때부터 먼 거리를 뛰어서 통학한 점과, 고지대인 리프트밸리의 낭떠러지 위에 산다는 문화적 공통점이 있다.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나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도 오로모 족이었다. 오로모 족은 커피를 먹으면서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오로모 족은 1999년, 대표적인 공정무역 커피인 오로미아 커피 농업인협동조합을 설립해 에티오피아 최초로 커피를 수출한 민족이기도 하다.

80여 개 민족으로 구성된 에티오피아에서 오로모 족은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최대 종족이다. 유목민이었던 오로모 족은 16세기 중반, 케냐에서 이주했다. 오로모 족은 그러나 함하라 족(27%)과 티그레이 족(6%)에 밀려 늘 권력의 중심에서는 멀었다. 그런 오로모 족이 사는 오로미아 주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인접해 있어 도시 확장 정책과 늘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오로모 족은 지금 아디스아바바의 도시 확장 정책에 맞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5년 말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시위에서 2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페이사 릴레사. 오로모 족인 그는 결승점과 시상식에서 반정부 퍼포먼스를 벌여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같은 오로모 족인 아베베와 릴레사, 올림픽 후 한 사람은 국민 영웅이 되었고, 한 사람은 망명을 앞두고 있다. 정치와 스포츠의 묘한 역학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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